올해 A씨처럼 '무자본 갭투자' 사기의 덫에 걸린 피해자가 속출하고 있습니다. 앞서 저금리에 전세난이 계속되고 매매가와 전셋값 차이인 '갭'이 얼마 나지 않는 시장 상황을 악용한 건데요. 무려 전세사기 피해자가 누적 8000건을 넘어섰습니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16일 '전세사기피해지원위원회' 전체회의를 열고 895건을 심의해 694건의 전세사기피해자 등으로 최종 가결했다고 밝혔는데요. 이를 포함 최종 사기피해자로 가결한 건은 모두 누계 8248건입니다. 긴급 경공매 유예 협조 요청 가결건도 누계 733건에 달합니다.
이는 공식적으로 집계된 것일 뿐 실제 피해 규모는 더 클 것으로 우려됩니다. 지난해부터 '빌라왕', '건물왕'이 활개를 치더니 심지어 지난 9일에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 전직 간부의 가족이 광주 오피스텔 133가구 보증금 95억여원을 돌려주지 않은 사건까지 벌어졌죠.
세계적으로 우리나라에 유일한 임대차 유형인 전세는 그동안 서민들의 내집 마련을 위한 징검다리 역할을 해왔습니다. 이런 서민들의 마음을 악용하는 전세사기가 늘어나자, 올해 전세에서 월세로 갈아타는 '월세화'가 가속화하는 분위기입니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서울 다세대(빌라·연립)의 전월세 거래량은 2만7611건인데요. 이중 전세 비중은 54.0%인 1만4903건으로 집계됐습니다. 이는 관련 통계가 작성되기 시작한 2011년 이후 1분기 기준 가장 낮은 비율입니다. 월세라 통칭하는 준월세와 준전세 비중은 반대로 늘었습니다. 2·3분기 전세 비중은 각각 53%로 소폭 줄었고요.
전국 단위로 살펴보면 월세화는 더욱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서울·경기 등 일부 지역에서는 전월세 수요 10명 중 최대 6명이 월세를 선택할 정도로 선호도가 역전됩니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박상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토교통부에서 제출받은 전월세 현황 자료를 분석한 결과, 지난 6월 전국 주택 임대차 계약 21만3265건 중 전세 계약은 9만7964건으로 45.9%를 차지했습니다. 지난 2019년1월 전체 16만8781건 중 전세가 10만2464건으로 60.7%를 차지한 것과 비교하면 14.8%포인트 낮아진 겁니다.
서울 전세 비율은 같은 기간 59.7%에서 45.0%로, 인천(62.1→53.2%)과 경기(63.8→48.2%)도 비슷한 감소세를 나타냈습니다. 반대로 월세는 전국 기준 2019년1월 5.8%에 불과했지만 지난 6월 12.6%로 두 배 넘게 증가했습니다. 서울도 같은 기간 4.8%에서 8.5%로 늘었죠.
이처럼 '전세 공포'로 인해 월세로 이동하는 임차인이 늘어나자, 정부에서 부랴부랴 대책반을 꾸리며 진화에 나섰습니다. 그럼에도 월세화가 계속되자, 월세 수요가 늘어나면서 월세 가격이 오르고 있습니다.
한국부동산원에 월간주택가격동향을 보면 전국 빌라 월세가격지수는 꾸준히 상승세입니다. 가격지수 변동률은 2023년 3월 0.03%로 상승전환한 뒤 4월 0.10%, 7월 0.12%, 9월 0.16% 등 확대됐습니다. 다만 계속된 10월에는 0.04%를 기록했는데요. 이전보다 주춤하지만 여전히 상승세는 계속되는 분위기입니다.
기준금리 인상에 고물가까지 이어지는데 월세까지 오른다면, 생활비 부담이 만만치 않을 겁니다. 이대로 월세가 계속 오른다면 아무리 전세사기 위험이 도사린다고 하더라도 전세에 남겠다는 임차인들이 속속 생겨날 수 있겠어요. 위험을 확률에 맡기겠다면서요. 마음 편히 전세와 월세, 골라 살 수 있는 날이 언제 올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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