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에 입학한 이호진(가명·16)군은 주변 친구들이 온라인 도박사이트에서 불법도박을 하는 걸 보고 따라 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1만원, 2만원씩 넣어 바카라 등 불법카지노 게임을 하다가 나중엔 도박 금액이 40만원, 60만원까지 커졌다. 하루에 많게는 1200만원까지 잃었고 빚이 800만∼900만원에 달한 적도 있다. 이군은 “도박으로 돈을 따면 빚을 갚지 않고 번 돈을 더 불릴 생각을 했다”며 “도박하기 전엔 친구들이랑 같이 밥 먹고, 게임도 했는데 도박을 하니까 그런 게 재미없고 시시해졌다”고 말했다.
지난 15일 방문한 전북 무주군 국립청소년인터넷드림마을(드림마을)에선 이군처럼 사이버도박에 빠진 청소년들이 모여 일상 회복을 위한 치유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이들은 11박12일간 도박 의존을 떨치기 위해 상담과 도미노 게임·악기 연주와 같은 대안활동, 체육활동 등을 한다. 이 과정이 쉽지는 않다. 스마트폰을 쓸 수 없고, 바깥과 단절돼 단체 생활을 하는 걸 견디지 못하고 포기하는 경우가 적잖다. 도박 문제로 입소한 청소년 대부분이 스마트폰 과의존과 흡연, 음주,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우울 등 복합 문제를 갖고 있어 충동을 억누르기 쉽지 않아서다. 처음 입소인원은 17명이었지만 5명이 중도에 탈락했고 이날도 한 입소생이 소화기를 뿌리면서 퇴소해 경찰이 출동하는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사이버도박에 빠진 청소년이 늘어나면서 도박 문제를 치유할 수 있는 전문기관의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19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도박 중독으로 병원을 찾는 청소년은 △2018년 65명 △2019년 93명 △2020년 98명 △2021년 127명 △2022년 102명 △2023년(8월 기준) 111명으로 늘어나는 추세다. 드러나지 않은 도박 위험군은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여성가족부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청소년 사이버도박 위험군은 2만8838명. 도박에 중독된 청소년은 도박 조직의 중간책으로 활동하며 범죄에 직간접적으로 가담하기도 해 이른 시기에 중독 문제에 개입하는 게 중요하다.
청소년디딤센터 등 청소년 정서·행동 문제를 다루는 시설들은 있지만 사이버도박에 특성화된 지원 체계는 아직 미흡하다. 도박 문제로 입소해 치료받을 수 있는 기관은 국내에 드림마을 한 곳뿐이다. 청소년 도박 문제에 맞는 상담치료매뉴얼도 아직 없다. 관련 매뉴얼을 개발 중인 이해국 가톨릭대 의정부성모병원 교수(정신건강의학)는 “자극추구 성향이 큰 아이들, 내적 불안이 높아 사회활동 어울리지 못하는 아이들 등 성향에 따라 치료 프로그램이 달라져야 한다”고 말했다.
도박 문제를 겪는 청소년을 지속해서 지원할 체계가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드림마을에 입소한 박찬홍(가명·15)군은 “솔직히 (퇴소하면) 도박이 생각날 것 같다”며 “여긴 휴대폰이 없으니까 (못하지만) 나가서 돈도 떨어지면 더 하고 싶을 것 같다”고 했다. 이 교수는 “중독은 길게는 평생을 가기도 하는데 청소년 땐 6개월만 지속해도 문제가 된다”며 “학교와 청소년시설, 정신의료기관 등이 연계돼 지원할 체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