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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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부모가 애 숨기면 조사 못해”…위기아동 발굴시스템 헛바퀴

정부 5년간 발굴 아동학대 98건뿐

예방접종·결석 등 정보 분석해
가정방문·서비스 연계한다지만
아이와 직접 소통하지 않으면
신체·정서 학대는 확인 어려워
시스템 자체 실효성 지적 커져

정부가 ‘위기아동’을 발굴하기 위한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지만, 이를 통해 발견된 학대 피해 아동은 지난 5년여간 100명이 채 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출생미신고 아동 문제가 불거지면서 정부는 이 시스템에 출생미신고 아동까지 포함하도록 법을 개정했지만, 시스템 자체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19일 ‘아동학대예방의 날’을 맞아 더불어민주당 서영석 의원실이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8년부터 지난 9월까지 ‘e아동행복지원시스템’을 통해 아동학대가 의심돼 지자체에 신고된 사례는 총 187명으로 집계됐다. 이 중 지자체 조사 결과 아동학대로 판단된 사례는 98명이었다. 지자체 조사 당시 아동학대로 판단되지 않은 89명 중 6명은 추후 별도 사건으로 아동학대로 판명됐다.

2018년 3월 처음 도입된 e아동행복지원시스템은 정부가 위기아동을 찾고 학대 피해를 줄이기 위해 가동하는 시스템이다. 예방접종미접종, 건강검진미검진, 장기결석, 건강보험료 체납 등 44종의 사회보장 정보를 분석해 학대피해가 의심되는 아동을 ‘아동 행복 지원 발굴 대상자’로 등록하고, 지자체 공무원이 대상자 가정을 방문 조사한 뒤 필요할 경우 복지서비스를 연계하거나 경찰에 학대 신고를 하게 된다.

 

출생미신고 아동 관련 문제가 불거지면서 정부는 지난 8월 ‘사회보장급여의 이용·제공 및 수급권자 발굴에 관한 법률’ 시행령을 개정해 임시신생아번호·임시관리번호만으로도 e아동행복지원시스템에 연계하게 했다. 복지부는 출생신고가 되지 않아 주민번호가 없는 위기아동도 발굴할 수 있게 됐다고 평가한 바 있다.

 

하지만 애초 e아동행복지원시스템으로 아동학대를 발견하는 비율 자체가 현저히 낮다. 아동학대 사건은 연평균 3만건 이상 발생하고 있다. 복지부가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간 아동학대로 판단한 사건은 총 15만1130건을 기록했다. e아동행복지원시스템을 통해 발견된 98명과 비교하면 큰 차이가 있다.

전문가들은 ‘위기아동 발굴’이라는 정책 목표에 맞게 e아동행복지원시스템 운영 방식을 개선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공혜정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대표는 “e아동행복지원시스템으로 발굴된 학대 아동은 전체에 비해 굉장히 미미하다”며 “공무원이 현장 조사를 갔을 때 방임처럼 눈에 보이는 것은 발견할 수 있지만, 신체적·성적·정서적 학대는 부모가 아동을 숨겨두거나 ‘지금 집에 없다’는 식으로 못 만나게 하면 알 수 없다”고 꼬집었다. 공 대표는 “행위자만 조사하는 게 아니라 아동의 이야기도 들어야 한다”면서 “학대 아동은 부모에 대한 양가감정을 갖기 때문에 일회성 조사에 그쳐서는 안 되고 장시간 상담하며 라포를 형성한 뒤 아동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고 전했다.

 

시스템 모형을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한국사회보장정보원 김선월 연구위원은 지난 3월 발표한 ‘진료정보기반 아동학대 위험도 자동평가모델 개발방안 연구’에서 “e아동행복지원시스템의 위기아동 발굴 모형은 다양한 데이터를 하나의 모델에 넣어 분류함으로써 의미 있는 데이터의 특성이 오히려 상쇄되거나 기존 모델의 데이터 희소성으로 데이터 성능이 더 저하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진료 정보만을 활용하는 별도의 모델을 운영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전했다.


조희연 기자 choh@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