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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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가 거부하면 소용없어요”… 의료분쟁조정신청 39% ‘각하’

2022년 신청된 1660건 중 645건
환자는 법적 다툼 선택 불가피
“미동의해도 자동절차 개시해야”

의료분쟁 조정신청 10건 중 4건가량은 의료기관의 조정 거부로 착수조차 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소비자분쟁이나 언론중재처럼 의료분쟁 역시 신청인(대부분 환자) 조정신청이 접수되면 피신청인(대부분 의료기관)의 동의 여부와 상관 없이 자동조정절차에 돌입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19일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의 의료분쟁조정·중재 통계연보에 따르면 지난해 조정신청된 2051건 중 자동개시되는 중대의료사고(사망, 1개월 이상 의식불명, 중증 장애 등) 관련 조정신청(391건)을 제외한 일반개시 조정신청 건수는 1660건이다. 이 중 피신청인의 미동의 등으로 각하된 신청 건수는 645건으로 일반개시 조정신청 건수의 38.9%에 달한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의료분쟁조정법에 따르면, 조정신청이 접수되면 의료분쟁조정원은 피신청인에게 조정 절차에 응할 것인지를 묻고, 피신청인이 14일 이내에 동의 의사를 밝히지 않으면 각하된다.

의료분쟁조정과 달리 언론중재위원회, 소비자분쟁조정위원회, 환경분쟁조정위원회 등 대부분의 분쟁조정 제도는 신청이 접수되면 자동으로 절차가 개시된다. 피해를 신속히 구제해 갈등이 소송으로 확대되는 것을 차단하려는 이유에서다.

의료기관이 분쟁 조정을 거부하면 환자는 피해를 구제받기 위해 법적 다툼을 벌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민사소송의 원고(환자) 승소율은 매우 낮다. 2021년 의료사고 관련 민사소송 879건 중 원고 전부 승소는 6건(0.68%)에 불과하다. 이러한 이유로 환자단체 등은 의료사고의 직접적 피해자인 환자가 소송하지 않고도 피해를 구제받을 수 있는 제도 개선에 나서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반면 의사단체는 “한국은 의료사고 발생 시 의사에 대한 형사 기소율과 유죄율이 외국에 비해 비정상적으로 높다”며 “(의료사고 면책 범위를 확대하지 않으면) 필수의료 기피 현상은 더욱 심화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법원의 ‘2023 사법연감’에 따르면 지난해 형사재판 1심 판결을 받은 의사 1297명 중 6.9%인 90명만이 징역, 금고, 구류형을 선고받았다.


송민섭 선임기자 stsong@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