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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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리포트] 안 팔리는 중국 세일즈 외교

시진핑 “개방적 세계화” 외치며
침체된 中에 투자유치 나섰지만
‘반간첩법 리스크’ 해소 방안 등
불확실성 대한 해법 제시 못 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에이펙) 정상회의를 계기로 ‘세일즈 외교’에 나서는 것처럼 보였지만 결국 세일즈는 없었다.

중국은 최근 부동산 위기와 디플레이션(물가 하락) 등 경제 침체를 겪고 있는 가운데 외국 자본(외자) 유치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급속한 외자 이탈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것으로, 중국 상무부 등에 따르면 올해 1∼10월 대(對)중국 외국인직접투자(FDI)는 전년 동기 대비 9.4% 줄었다. 앞서 시장조사기관 윈드는 지난 9월 중국에 유입된 FDI가 728억위안(약 13조1000억원)에 그쳐 전년 동월 대비 34% 급감했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이우중 베이징 특파원

이 같은 상황에서 중국은 세일즈 외교를 펴고 있지만, 면면을 들여다보면 정말 투자 유치 의지가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 시 주석은 에이펙 정상회의 참석차 미국을 방문한 지난 15일(현지시간) 미국 기업 최고경영자(CEO) 등 재계 인사들과 함께한 만찬에서 “중국은 미국의 동반자이자 친구가 될 준비가 돼 있다”며 “중국은 결코 미국을 상대로 내기를 걸지 않고, 내정에 간섭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판다 보존에 관해 미국과 계속 협력할 준비가 돼 있다”며 판다 외교 지속 가능성을 언급해 좌중으로부터 박수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중국은 미국에 도전하거나 미국의 자리를 빼앗으려는 의도가 없다”는 그의 말은 미국인이 듣기에 좋은 말일지언정 기업인들이 원하는 답은 될 수 없었다. 투자나 무역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이 전혀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 자산운용사 매슈스아시아의 앤디 로스먼 투자전략가는 월스트리트저널에 “시 주석이 중국 내 경영 환경에 대한 미 재계의 우려를 해소하고, 그의 국내 경제정책이 어떻게 발전할지에 대한 생각을 공유할 기회를 잡지 못한 것에 실망했다”고 밝혔다.

시 주석은 이튿날 열린 에이펙 CEO 서밋에는 아예 참석하지 않은 채 서면 연설문만 보냈다. 서면 연설문의 내용도 맹탕이긴 마찬가지였다. 연설문에는 “중국은 외국인 투자자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를 지속해서 개선하고 투자자에 대한 내국민 대우를 완전히 보장할 것”이라든가 “외국 기업에 지속적으로 (국내 기업과) 동등한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중국 내 외국인의 입국 및 체류 정책을 개선하는 등 더욱 따뜻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는 등의 원론적인 내용만 담겨 있었다.

이마저도 수사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중국 지도부는 최근 들어 에이펙 이전부터 개방적이고 우호적인 내용의 대외 언사를 쏟아내고 있지만 말뿐이라는 평가다. 시 주석은 지난 5일 상하이에서 열린 국제수입박람회 개막식에 보낸 서한에서 “중국은 세계 발전의 중요한 기회가 될 것이고 높은 수준의 개방을 추진할 것”이라며 “더욱 개방적이고 포용적인 경제 세계화를 추진할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리창 총리 역시 개막식 연설에서 “중국은 적극적으로 수입을 확대하고 상품과 서비스 무역의 조정을 촉진하겠다”고 밝혔다.

중국 국무원은 지난 8월 ‘외국인 투자 유치 확대에 관한 의견’을 통해 외자 기업에 자국과 동등한 대우를 보장하는 등 시 주석의 에이펙 CEO 서밋 연설문 내용과 비슷한 지침을 내리기도 했다. 그러나 앞서 지난 3월 미국 기업실사업체 민츠그룹의 베이징 사무소가, 4월에는 미국 컨설팅회사 베인앤드컴퍼니의 상하이 사무소가 각각 경찰의 급습을 받은 데다 7월에는 고강도 반(反)간첩법이 발효된 상황에서 해당 지침만으로 돌아선 외국 기업의 투자심리가 다시 불붙을 리 만무하다.

최근에는 미국 여론조사·컨설팅 기관 갤럽이 중국에서 사업을 철수할 예정으로 전해졌는데, 중국 이외 지역에서 수행한 여론조사에서 중국에 부정적인 결과가 나오는 경우가 잦아 당국의 미움을 샀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이런 관점이 사실이든 아니든 이처럼 이미 당국의 정책에 대한 신뢰가 없어진 상황에서 투자를 다시 불러오기 위해서는 불확실성 해소가 먼저다. 구체적으로 중국 당국은 외자 기업에 어떤 혜택을 줄 수 있는지를 설명하고, 반간첩법 리스크 해소에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이우중 베이징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