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지재단이 주식의 '셀프 기증'이라는 편법을 통해 법망을 비웃으며 연합뉴스TV 강탈을 노리고 있다.
재단 산하의 의료법인인 을지병원과 학교법인인 을지학원이 동일체임에도 불구하고, 의료법 규제를 피하기 위해 병원의 주식을 학원에 무상 기증해 연합뉴스TV 빼앗기를 시도하는 것이다.
의료계에서 얻은 수익으로 방송사업을 하려 한다는 점에서 '비영리성'과 '공익성'이 핵심인 의료법인의 취지에 벗어난 것이라는 비판이 거세다.
법조계에서는 학교법인의 이익을 위해 의료법인에 손해를 끼치는 것인 만큼 '배임' 소지가 강하다는 시각이 많다.
◇ '영리 금지' 의료법 피하려고 학교법인에 '꼼수 지분 넘기기'
연합뉴스TV 주식 60만주(4.97%)를 보유했던 을지병원은 지난 8월 30일 을지학원에 전체 보유 주식을 넘기는 주식 기증 계약을 체결했다.
연합뉴스TV 경영권 강탈을 노리는 상황에서 '의료법인의 영리 행위를 제한하는' 의료법이 걸림돌이었는데, 이를 피하기 위해 꼼수를 쓴 것이다.
을지학원과 을지병원은 각각 지분 9.917%와 4.959%를 보유한 2대 주주로, 지난 2011년 연합뉴스TV 출범에 참여했다.
이후 1대 주주인 연합뉴스 몰래 지분을 추가로 매입해 왔고, 박준영 을지재단 이사장 보유분 등을 합쳐 지분율이 30% 이상이 되며 연합뉴스보다 많아지자, 지난 13일 방송통신위원회에 '연합뉴스TV 최다액 출자자 변경'을 신청하며 연합뉴스TV에 대한 적대적 인수합병(M&A)을 시도하고 있다.
을지병원의 주식 기증은 이렇게 경영권 강탈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영리행위를 극도로 제한한 의료법 규정에 따라 을지병원이 연합뉴스TV의 최다액 출자자가 될 수 없자, '셀프 기증'이라는 꼼수를 써서 법망을 피하려 한 것이다.
의료법은 49조에서 의료법인이 의료업무 외에 할 수 있는 부대사업을 부설 장례식장이나 주차장, 노인의료복지시설 등 의료와 관련한 극히 일부로 제한하고 있다.
이는 의료가 갖는 '공익성'과 '비영리성'을 고려한 규정이다.
보건복지부는 "(을지병원이) 방송사업의 주체가 되거나 직접 수행하는 경우에는 의료법인 설립 취지 및 목적사업을 벗어난 것이어서 의료법 위반 소지가 있다"고 유권해석을 내린 바 있다.
을지병원 이사장은 박 이사장의 부인인 홍성희 이사장이고, 을지학원의 이사장은 다시 박준영 이사장이다. 홍성희 을지병원 이사장은 을지대 총장을 맡고 있다.
부부가 서로 얽히고설켜 이사장직을 맡고 있는 상황에서 '눈가리고 아웅' 식으로 '기증'이라는 편법을 써서 대놓고 의료사업으로 번 돈을 교육법인에 넘긴 것이다.
을지재단 홈페이지는 박 이사장에 대해 "남다른 을지사랑으로 을지대학교와 을지대학교의료원을 국내 굴지의 대학과 병원으로 키워왔다"고 적으며 박 이사장이 주식이 오간 두 법인의 실제 소유주라는 것을 감추지 않았다.
◇ 병원에서 난 수익, '병원 밖' 유출…"'비영리' 원칙 의료법 취지에 어긋나"
을지병원이 주식을 을지학원에 양도한 것은 '비영리'와 '공공성'을 핵심으로 하는 우리나라 의료체계를 흔드는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을지병원이 대가 없이 을지학원에 넘겨준 60만주의 연합뉴스TV 주식은 환자를 치료한 뒤 환자와 건강보험 등에서 받은, 즉 의료 행위를 통해 벌어들인 돈으로 취득한 것이다.
주식 투자를 통해 얻은 이익을 다시 의료에 투입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지만, 의료로 벌어들인 돈을 '의료계 밖'으로 유출하는 것은 의료의 공공성이라는 우리 의료체계의 원칙에 정면으로 반한다.
학교법인이 의료기관을 직접 운영하는 경우도 많으나, 이 경우 엄격한 회계 규정에 따라 의료로 인한 수익을 분리해 따로 복지부에 보고해야 한다.
더구나 을지병원의 주식 기증은 의료 자체가 목적이 아닌, '방송사 적대적 M&A'를 위한 것이다.
권칠승 더불어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지난 17일 국회 브리핑에서 "연합뉴스TV의 경영권 확보를 위해 을지병원의 지분을 을지학원으로 넘긴 것은 '의료법 위반' 소지가 다분하다"며 "법 위반이 아니더라도 의료사업으로 번 돈을 교육재단에 양도하며 수익사업에 쓰는 것은 명백히 '꼼수'"라고 비판했다.
의료계 안팎에서도 을지병원의 주식 기증이 영리행위를 금지한 의료법의 허점을 이용한 나쁜 사례가 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사립대 병원을 운영하는 의료법인과 교육법인은 일가가 소유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의료의 공공성을 생각한다면) 병원에서 나오는 수익은 다시 병원에 쓰이는 게 맞다"며 "공공성을 강화하는 쪽으로 제도를 개선할 게 없는지 살펴보겠다"고 밝혔다.
◇ 주식 60만주 공짜로 포기…의료법인에 손해 끼쳐 '배임' 지적
을지병원이 주식을 기증 형식으로 을지학원에 넘겨준 것은 '배임'일 가능성이 작지 않다.
적대적 M&A라는 목적을 위해 거액의 주식을 다른 법인에 넘겨주는 것이 을지병원에 큰 손해를 끼치는 것이기 때문이다.
방송과 의료 분야에 정통한 한 변호사는 "(주식) 기증이라는 행위의 목적이 갖는 정당성이나 금액 크기를 살펴보면 배임으로 보일 소지가 크다"며 "주식 기증 목적은 학교 법인의 발전이 아니라, 을지학원의 경영권 확보를 위한 것이 명확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편법으로 적대적 M&A를 해 경영권을 빼앗으려고 (을지)학원에 기증한 것"이라며 "배임 여부를 판단할 때 기부가 정당한지를 따져봐야 하는데, 정당하지 않다고 볼 여지가 많다"고 설명했다.
작년 을지병원의 회계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을지병원의 연합뉴스TV 보유 주식 총액은 취득원가로 계산해도 30억원이다.
출범 후 10여년이 흐르면서 연합뉴스TV의 매출과 영향력이 급격히 커진 것을 감안하면 주식 가치는 이보다 훨씬 클 것으로 예상된다.
을지병원의 작년 연말기준 부채 규모는 1천352억원이나 돼 자본총계인 1천96억원보다 컸다. 부채비율이 100%를 넘어서 거액의 주식을 무상으로 기증할 만큼 재정이 넉넉하지 않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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