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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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희창칼럼] 2기 공수처장, 판사 출신은 안 돼

출범 후 3년 수사 실적 너무 초라해
‘아무도 무서워하지 않는’ 수사기관
金처장 ‘후임자로 판사 물색’ 물의
수사·지휘력 검증된 인사 앉혀야

문재인 전 대통령이 2020년 12월 말 초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장에 김진욱 헌법재판소 선임연구관을 지명했을 때 의아했다. 수사 경험이 없는 판사 출신이 고위공직자들에 대한 수사를 잘해낼지 의문이 들어서다. 더구나 실무를 지휘하는 공수처 차장마저 판사 출신을 앉혀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들었다. 당시 법조계 지인들은 대부분 “지휘부가 수사를 몰라 상당한 혼란을 겪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문 전 대통령은 왜 판사 출신을 공수처 수장에 앉혔을까. 검찰개혁을 정권의 최우선 과제로 내건 마당에 검사 출신 기용은 명분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 듯하다. 검사들에 대한 ‘원초적인 불신’도 컸다. 하지만 판사 출신이 이끄는 공수처가 이토록 무능할 것이라고 짐작이나 했을까. 수사와 재판은 메커니즘이 다르고, 수사 능력은 하루아침에 쌓이는 게 아니라는 상식을 간과한 결과다. 공수처가 ‘유명무실’, ‘아무도 무서워하지 않는’ 수사기관이 된 데는 그의 책임도 크다.

채희창 수석논설위원

첫 단추를 잘못 꿴 결과는 참담하다. 공수처 출범 후 3년간 수사 실적은 너무 초라하다. 검사 20여명에, 한 해 200억원 가까운 예산을 쓰면서 구속 실적이 전무하다. 지난 8일 감사원 3급 간부의 뇌물수수 혐의 영장이 기각되는 등 지금까지 4차례 영장 청구가 법원에서 모두 기각됐다. 그나마 1심 재판이 끝난 두 건도 모두 무죄가 나왔다. 국민들은 공수처가 그간 도대체 뭘 했는지, 존재 이유가 있는지 묻고 있다.

‘말 많고 탈 많던’ 김 처장의 임기가 내년 1월 끝난다. 지난 10일 김 처장이 국회 예결위 회의장에서 후임 공수처장 임명에 대해 논의하는 문자 메시지를 여운국 공수처 차장과 주고받는 장면이 포착돼 물의를 빚었다. 여 차장이 판사 출신 몇명의 실명을 들어 “수락 가능성이 제로”라고 하자 김 처장은 “검사 출신은 그래도 오겠다는 사람이 있는데 판사 출신은 쉽지 않을 것”, “수락 가능성이 높다고 추천할 수도 없고요, 참”이라고 했다. 판사 출신 후임자를 추천하겠다는 의도가 읽힌다. 공수처장은 후임 추천 권한이 없어 그 자체가 부적절한 행위인데도 말이다.

김 처장의 리더십은 여러 차례 도마에 올랐다. 김성문 부장검사는 지난 5월 사직하면서 “내부의 비판적 의견을 외면하는 조직은 건강한 조직이 아니다”라고 직격했다. 수사 방향과 절차를 놓고 김 처장과 실무진 마찰이 잦았다고 한다. 지금까지 사표 쓴 검사가 11명이다. 김 처장이 지난 6월에야 주변에 “수사가 이렇게 어려운 건지 이제야 알았다”고 토로한 것도 황당하다. 검사들을 스피치 학원에 보내겠다며 세금을 달라고 한 건 코미디가 아닐 수 없다.

조직의 권위가 떨어지다 보니 공수처 수사에 피의자들도 거침없이 저항하고 있다. 전현희 전 국민권익위원장에 대한 ‘표적 감사’로 수사받고 있는 유병호 감사원 사무총장은 4차례나 소환 요청을 받았지만 불응했다.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사건 수사 미진’ 의혹으로 수사받았던 검사 3명 중 현직 검사 2명은 공수처 요구에도 불출석했고, 서면조사에도 응하지 않았다. 수사기관으로서 영이 서지 않는 건 심각한 문제다.

국회는 지난 8일 공수처장 후보추천위원회 구성을 마치고 첫 회의를 가졌다. 김진표 국회의장은 이 자리에서 “수사 역량과 정치적 중립성이 차기 공수처장의 필수 요건”이라고 했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수사 능력이 있고 중립성을 지킬 만한 사람 중에 선뜻 공수처장을 하겠다는 사람을 찾기 어렵다고 한다. 공수처가 ‘검사들의 무덤’이란 오명을 받아 유능한 전·현직 검사들이 기피해서다. 현 정권이 공수처를 부정적으로 보는 것도 부담이다.

새 공수처장이 누가 되느냐는 중대한 사안이다. 후보추천위는 김 처장의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공수처의 존재 이유는 수사력으로 증명할 수밖에 없다. 그러려면 수사·지휘 능력이 검증된 적임자를 추천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판사 출신을 다시 추천하지는 말라. 윤석열 대통령도 자신과 친한 검사 출신을 공수처장에 앉히고 싶은 유혹을 떨쳐내야 한다. 정파에 얽힌 수장이 가면 공수처는 설 자리마저 잃게 될 것이다.


채희창 수석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