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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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 교묘해지는 ‘꼼수’ 인플레이션

“초콜릿(chocolate) 맛이 초콜릿 같은(chocolatey) 맛으로 바뀌었다.” 캐나다 방송 CBC가 최근 글로벌 식품 기업 퀘이커사의 초코바 제품 ‘딥스 그래놀라 바’의 성분이 바뀐 사실을 고발하면서 언급한 말이다. 확인 결과 초콜릿 코팅 원료인 코코아 버터가 값싼 팜유로 둔갑돼 있었다. 이른바 스킴플레이션(skimpflation)이다. skimp는 ‘인색하게 아낀다’는 뜻이다. 가격·양은 그대로인데 제품의 질을 낮추는 행태다. 용량을 줄이는 슈링크플레이션보다 더 나쁘다.

우리 기업도 사정은 비슷하다. 롯데칠성음료는 델몬트 오렌지 주스 과즙 함량을 100%에서 80%로 낮췄다. 치킨 프랜차이즈 BBQ는 튀김기름으로 ‘100%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 오일’을 사용하다가 최근 ‘올리브·해바라기유 50% 블렌딩 오일’을 사용한다고 공지했다. 호텔, 커피숍, 외식업 등이 서비스 횟수나 반찬 수를 줄이거나 무료 지급품을 유료로 전환하는 것도 같은 방식이다. 박리다매란 말도 무색해졌다. 더 많이 사면 싸게 해주는 시장 원리를 비웃듯 묶음 상품 가격이 낱개보다 더 비싼 ‘번들플레이션’까지 등장했다. 소비자들의 심리를 파고든 ‘번들의 배신’이란 말까지 나오는 지경이다.

기업들이 교묘한 눈속임으로 소비자를 기만하는 행위가 극에 달하고 있다. 원자재 가격 상승에 따른 기업의 고충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BBQ의 사례처럼 소비자들에게 알리는 성의는 보여줘야 한다. 오죽하면 올릴 때는 빠르게, 내릴 때는 느릿느릿한 행태를 두고 탐욕이라는 의미의 그리드플레이션(greed+Infiation)이라는 말이 나왔겠는가. 정부가 슈링크플레이션에 대한 실태조사를 예고했다. 이러다가 물가관리 당국에 ‘배추국장’, ‘무과장’이라는 직책이 생길지도 모르겠다. ‘불법’과 ‘꼼수’는 엄연히 다르다. 가격통제 논란을 감수할 만큼 효과를 거둘지도 미지수다. 정부가 압박하면 기업은 ‘소나기만 피하자’는 식의 일시적 가격환원 조치를 취할 것이다. 하지만 인위적 억제는 풍선효과를 낳기 마련이다. 기업 입장에서 손해를 보고 팔라는 얘기가 아니다. 꼼수는 소비자 불신과 기업 이미지 하락으로 이어진다. 원가 절감과 품질 향상 노력을 게을리해선 안 될 것이다.


김기동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