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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교장·상담교사 모두가 ‘원팀’… 위기 징후 찾아내 선제 대응 [심층기획-학생맞춤통합지원체계 마련하자]

<중> 어떻게 할 것인가

학교 구성원이 학생 어려움 ‘조기 발굴’
통합지원팀서 문제점 분석… 사업 매칭
가정불화로 학교 적응 못하던 탈북 학생
외부 미술강사 연결… 밝은 아이로 변모

학력부진 아이 교우 관계까지 복합지원
사후처방 중심서 사전 문제예방 탈바꿈
“교사 혼자 떠맡아 해결하는 구조 한계
팀 시스템 구축 땐 학생 지원 효과 배가”

복지 정책의 화두 중 하나는 ‘사각지대’다. 국가는 다양한 복지제도를 운영하지만, ‘공급자’ 관점에서만 지원 대상을 찾을 경우 눈길이 미치지 않아 소외된 이들이 발생한다. 이 때문에 ‘수요자’ 중심 지원체계 구축의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학교 역시 마찬가지다. 기초학력 부진, 심리·정서 위기 등 복지 사업별로 지원 대상을 찾는 현 체계는 도움이 필요한 학생을 찾는 것이 제한적인 데다 이미 문제가 발생한 학생을 지원하는 구조여서 문제 예방이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학생 한 명 한 명이 가진 어려움을 분석한 뒤 필요한 지원을 연결하는 ‘학생맞춤통합지원체계’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사업’ 아닌 ‘학생’ 중심 지원 필요

20일 교육부에 따르면 현재 정부가 추진 중인 학생맞춤통합지원체계는 학생 지원 패러다임을 사업 중심이 아닌 학생 중심으로 바꾸는 것이다. 학교에서 학생 지원 사업을 벌일 때 사업마다 필요한 대상을 찾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식으로든 도움이 필요한 학생이 발견되면 그 학생의 어려움을 다각도로 분석하고 필요한 사업을 찾아 연결하는 식이다.

둘은 비슷한 얘기 같지만, 지원 과정이나 결과는 매우 다르다. 예를 들어 학업 능력이 떨어지는 학생이 있을 경우, 가정에서 방치되고 교우 관계가 안 좋더라도 가정 소득 수준이 낮지 않고 눈에 띄는 학교폭력 피해가 없다면 사업 중심 지원체계에서는 우선 기초학력 지원만 받을 가능성이 크다. 학생 중심 지원체계에서는 그 학생이 가진 여러 가지 문제를 모두 들여다보는 과정이 강화돼 기초학력 외 문제도 좀 더 쉽게 드러난다. 선제적으로 교우 관계 심리 상담이 들어가면 학교폭력 등 더 큰 문제가 발생하는 것을 막을 수도 있다.

학생에게서 도움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조기에 알아채는 것은 담임 교사만의 몫이 아니다. 학교장 등을 중심으로 학교에 통합지원팀이 만들어지고, 교육복지사, 상담·영양·보건교사 등 학교의 모든 구성원이 위기 징후를 찾아 통합지원팀에 아이를 연결한다. 각 학생이 지원을 받은 정보는 시스템으로 관리돼 학생이 전학 가거나 상급학교에 진학해도 새 학교에 연계된다. 공교육에 진입한 후부터 나갈 때까지 어떤 위기가 있었는지, 어떤 도움을 받았는지 등 정보가 종합 관리되는 것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현재 학생 지원 사업은 사후처방 중심이어서 조기 발굴·개입이 부족하고 예산과 담당자가 사업별로 파편화돼 복합적 어려움을 가진 학생 지원에 한계가 있다”며 “학생맞춤통합지원체계는 학생 지원을 총괄·연계하는 컨트롤타워를 만들고 한 명 한 명의 성장을 돕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복지 효과 높은 통합지원…법 제정돼야

교육부는 학생맞춤통합지원체계 운영 모델을 개발하기 위해 올해 3월 선도학교와 시범교육지원청을 지정했다. 현재 선도학교는 전국에 총 96곳으로, 3년간 교육지원청, 외부 기관 등과 협력해 다양한 학생 지원 모델을 개발한다.

선도학교인 서울 강서구 방화초등학교는 교직원 등이 도움이 필요할 것 같은 학생을 발견하면 교장을 중심으로 한 통합지원팀에서 회의를 연다. 보건교사가 양호실에 자주 오는 아이가 있다고 하거나 보안 직원이 운동장에서 노는 아이들을 지켜보다가 도움이 필요할 것 같다고 제보하는 경우도 있다. 신연옥 방화초 교장은 “아이를 만나 어떤 문제가 있는지 판단하고 기초학력 등 담당자에게 연결한다. 치료가 필요한 학생이면 치료까지 지원한다”고 설명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가정 문제 등으로 학교에 적응을 못 하던 탈북가정 학생은 학교에서 각종 지원을 했지만 큰 변화는 없었다. 어느 날 담임 교사가 “아이가 그림에 관심을 가진다”며 통합지원팀에 받을 수 있는 지원이 있는지 찾아봐 달라고 요청했다. 학교는 외부 지원 등을 찾아본 끝에 미술 강사를 연결했고, 수업을 들으면서 아이는 점차 밝아졌다. 현재는 학교생활을 잘하고 있다. 신 교장은 “기존처럼 탈북가정 지원, 기초학력 지원 등이 분절적으로 이뤄졌다면 아이를 돕는 데 한계가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담임 교사가 혼자 아이를 떠맡는 구조였다면 필요한 지원을 찾아 연결하기도 쉽지 않았을 것이란 설명이다.

신 교장은 “교사들은 아이에게서 문제가 발견됐을 때 필요한 지원을 찾는 역할은 통합지원팀에서 함께 해주니 부담이 없다고 한다”고 전했다. 이어 “도움이 필요한 아이가 많은데 교사 혼자 지원 사업을 찾고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며 “통합지원체계가 도입돼 팀 시스템이 모든 학교에 구축되면 교사의 어려움이 줄고 학생 지원 효과도 높아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서울의 한 중학교 교사는 신학기 때 접한 위기학생 예를 들었다. 그는 “입학식이 오후였는데 한 학생이 오전에 와서 이름을 적고 돌려보냈다. 나중에 영양교사가 점심시간에 유달리 밥을 많이 먹는 학생이 있다고 알려와 이름을 보니 또 그 학생이어서 가정에서 돌봄이 안된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이렇게 사소한 일이라도 공유되는 시스템이 있으면 학생에게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빨리 알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아이에게 문제가 터지지 않으면 지원이 들어가기 어렵다”고 말했다.

교육부는 학생맞춤통합지원체계 구축을 위해 시·도교육청 담당자, 현장 교사 등과 정기적으로 회의 등을 개최해 협력방안을 논의한다. 다만 가장 시급한 것은 법 제정이다. 정보 공유 등 통합지원의 근거가 법으로 마련되지 않으면 지원체계 구축에 한계가 있다. 교육부 관계자는 “현재 학생의 문제를 총체적으로 접근하는 정책과 법률이 미비하다”며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학생 지원을 위해 관련 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세계일보, 한국교육개발원 공동기획


세종=김유나 기자 yoo@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