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직 40대 김모씨는 최근 서울 강남구 한 정형외과 의원에서 ‘일자목’ 진단 후 받은 도수치료비를 확인하고 깜짝 놀랐다. 보통 도수치료비는 회당 10만원 정도로 알고 있었는데 60만원이 적혀 있어서다. A씨는 “2시간 가까운 치료 등 만족도는 높지만 일반 병·의원보다 6배나 더 많이 청구하는 것은 너무한다 싶었다”며 “실손보험으로 10%만 부담하면 돼 그나마 다행”이라고 혀를 내둘렀다.
도수치료와 백내장 등 실손보험에 기반한 건강보험 비급여 지출액이 동네 의원을 중심으로 해마다 ‘덩치’를 키우고 있다. 이들 비급여 치료 항목은 명확한 단가나 항목 등에 관한 기준이 없어 의료기관·지역별 편차가 크다. 의사·환자의 ‘과잉진료·치료’를 유발해 건보 재정 및 국민 의료비 부담을 가중하고 필수의료 인력 부족 사태의 한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0일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2021년 기준 건강보험환자 총진료비(111조1000억원) 중 비급여 진료비는 17조3000억원(15.6%)이다. 5년 전인 2017년과 비교해 비급여 진료비 규모는 3조원(21.0%) 더 늘었고 부담률은 1.5%포인트 줄었다.
비급여는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정해진 금액이 없는 진료 항목’을 말한다. 유형별로는 다빈치로봇수술처럼 진료상 경제성이 불분명한 ‘등재비급여’, 초음파와 같이 급여 항목이나 횟수 등을 초과하는 ‘기준비급여’, 제증명수수료처럼 규정에 따라 의료 기관에서 징수 가능한 ‘제도비급여’, 미용과 성형, 검진처럼 일상에 지장이 없는 질환 치료 등 소비자 선택 사항에 달린 것을 ‘선택비급여’로 나뉜다.
2021년 기준 유형별 비급여는 선택 50.5%, 등재 26.5%, 기준 19.6%, 제도 3.4% 순이었다. 병원급 이상은 기준·등재 비급여 비중이 60% 이상인 반면 31.0%의 동네의원을 비롯해 요양·치과병의원·한의원 등은 선택비급여가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다.
동네의원의 선택비급여 비중이 상대적으로 큰 이유는 실손보험 가입자에 대한 보험금 청구가 돈이 되어서다. 비급여가 기본적으로 정해진 금액이 없는 진료 항목이기 때문이다. 진료에 수반되는 여러 재료나 장비 수준, 의사 숙련도, 기술에 따라 청구 진료비가 천차만별일 수밖에 없다.
보건복지부가 지난 7∼8월 약 한 달간 병·의원 7만여곳을 대상으로 벌인 ‘비급여 진료비용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의원급(전국 6만5979곳) 도수치료의 경우 최저 0원부터 최고 60만원까지 천차만별이었다. 한때 동네의원들 사이에서 2021년 급여화 이전 홍보에 박차를 가했던 백내장수술 다초점렌즈의 경우 29만∼900만원(중간금액 280만원) 정도를 청구한다.
실손보험 가입자는 해마다 늘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실손보험 가입자는 2018년 3422만명에서 2022년 3565만명으로 늘었다. 백내장과 도수치료 등 10대 비급여에 따른 실손보험 규모 역시 같은 기간 1조4000억원에서 3조원으로 2배 이상 폭증한 상태다. 의사들이 저수익, 고위험인 중증·필수의료 분야보다는 고수익, 저위험 분야인 피·안·성·정(피부과·안과·성형외과·정형외과)으로 몰릴 수밖에 없다. 대부분 비급여 진료가 급여 진료와 병행되다 보니 환자들 부담도 커진다.
정형선 연세대 교수(보건행정학)는 “9월부터 시행된 비급여 진료비용 보고제를 더욱 촘촘하게 운영하고 점검·관리 체계 강화가 단기적 과제”라며 “장기적으로는 건보에서 급여하는 항목은 실손보험에서 보험금 지급 대상으로 하지 못하게 하는 등 실손보험을 건강보험 보완재 역할에 그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