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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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행정망 마비’에 발 동동… 손해배상 승소할 수 있을까 [법잇슈]

정부 행정 전산망이 지난 17일 돌연 마비되면서 시민 불편과 피해가 발생했다. 이번 사태로 확정일자를 받지 못하거나 주민등록등·초본, 인감증명서 등을 발급받지 못한 이들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청구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업무를 처리하지 못해 피해를 입은 이가 배상 받으려면 손해를 입증할 수 있는지가 핵심이다.

 

20일 법조계에 따르면 행정 전산망 마비 사태로 손해배상을 받으려면 원고인 시민이 손해 여부를 구체적으로 입증할 수 있어야 한다. 지난해 10월 ‘카카오 데이터 센터 화재’ 사건으로 시민단체 등이 카카오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선 법원이 최근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당시 법원은 “원고들이 피해가 있었다고 인정할 증거와 자료가 부족하다”고 판시했다.

 

지난 17일 광주 동구 한 행정복지센터에 설치된 무인민원 발급창구가 작동하지 않고있다. 뉴시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의 경우 카카오 사건과 비교해 더욱 피해를 입증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분석했다. 카카오 사태의 경우 통신·금융·교통 등이 마비된 것으로 즉각적인 피해가 발생했지만 이번 행정망 마비 사태의 경우 실질적인 재산적 피해가 발생했다고 증명하기 어려워서다. 양홍석 법무법인 이공 변호사는 “재산적 피해가 발생했다는 특별한 상황이 있어야 하지만 실질적으로 재산 피해가 발생했음을 가늠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정부로부터 손해배상을 받기 위해선 정부가 관리와 주의의무를 다하지 않은 ‘과실’이 확인돼야 한다. 원준성 법무법인 민후 변호사는 “국가에 불법행위 책임을 묻기 위해선 이번 사태에 있어서 국가 과실로 행정망이 마비됐다는 사실이 인정돼야 한다”며 “이 사실이 인정되면 손해액을 입증할 수 있어야 한다”고 전했다.

 

원 변호사는 ‘특별 손해’ 입증 여부가 관건이라고도 설명했다. 예를 들어 정부24에서 주민등록등본을 받지 못해 사업에 제출하지 못한 경우 통상의 인과관계를 넘는 손해다. 이를 특별 손해라고 한다. 특별 손해는 법상 당연히 예상되는 손해인 ‘통상 손해’와 달리 그 상황에서 특별한 사유로 인해 발생한 확대 손해를 뜻한다. 이번 사태에선 불법행위자가 국가기관이 된다. 국가가 위 피해자의 사례를 알거나 알 수 있었을 때만 책임이 인정되는 것이다.

 

그러나 원 변호사는 특별손해를 인정받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봤다. 사태가 시작된 17일 확정일자를 받지 못해 은행에 대출 신청을 하지 못한 경우도 위 사례와 유사하다. 원 변호사는 “매번 일어나는 일이 아닌 특정 사람에 한해서 일어나는 일이다”며 “국가가 그 사람의 은행 대출이 목전에 있고, 이런 특별한 사실관계를 알기 힘들기 때문에 일반 민법 법률로는 배상이 힘들 것이라고 예상한다”고 부연했다.

 

정부의 행정 서비스 중단에 일부 시민들이 당일 주민센터에 헛걸음하면서 소요된 시간, 교통비, 정신적 피해 등을 주장하며 소액 소송을 제기할 가능성도 있다. 이에 원 변호사는 “법리적으로는 가능하지만, 증거가 부족해 인정받기 어려울 것이다”면서 “시간이나 정신적 피해 등은 정확한 손해 액수를 산정하기 매우 어려운 사안으로 법리적으로 가능하지만 사실상 입증이 어렵다”고 설명했다.


김지호 기자 kimjaw@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