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재준(79) 전 육군참모총장. 청렴한 생활 태도와 올곧은 판단력으로 비겁하지 않은 군인의 길을 걸었다. 2005년 4월 전역하기까지 파란만장했다. 끝이 아니었다. 예편한 지 8년 뒤인 2013년 3월 박근혜정부에서 부름을 받았다. 기대만큼 우려도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2014년 5월 국정원을 떠난 남 원장은 청와대에 국정원 특활비 6억원을 지원한 혐의 등으로 기소돼 영어(囹圄)의 몸이 됐다. 지난해 5월 가석방되기까지 4년7개월을 수감 생활했다. 짧지 않은 시간이다. 그런 그가 지난달 40년 군 생활을 담은 회고록 ‘옥중에서 쓴 군인 남재준이 걸어온 길’을 내놨다. 인터뷰 요청 전화를 했을 때다. “총장님, 유명하셨잖아요”라고 했더니 “요란했지”라고 받아넘긴다. 거침이 없다. 수감 생활 내내 벽을 보고 이야기하다 보니 성대를 다쳐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는다는 것도 엄살로 들릴 정도다. “정권이 바뀌고 옥살이를 하면서 여든이 넘은 누이가 애달파하는 모습에 편지를 썼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지난날을 되돌아보게 됐다. 군인의 길을 걷거나 걸어갈 후배들에게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자 한다”는 소회를 피력했다. 책에는 남 전 총장의 인생 말고도 대한민국의 현대사가 담겼다. 논쟁이 컸던 역사적 사실에 대한 입장도 밝혔다. 회고록 출간 이후 일간지 중 처음으로 진행된 그와의 인터뷰는 지난 15일 서울 송파구 자택에서 진행됐다.
―오랜 수감생활이 힘들지 않았는지.
“석방되고 나서 만나는 사람마다 ‘그동안 고생 많았다’고 인사를 건넨다. 내가 고생하기보다 뒷바라지한 집사람이 더 힘들었을 게다. 먹여 주고 입혀 주고 재워 주고 아프면 치료도 해 주고, 거기다 세금도 안 내는 곳에 있었다.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는 곳이 구치소다.(웃음) 사실 좌파들과 투쟁하다 세가 약해서 감옥살이를 한 것이다. 아쉬움이 있을 리 있겠나.”
―특수활동비 문제로 실형을 살았는데.
“애초 국정원장 특활비는 정보 수집 활동을 위하여 원장이 판단하는 곳에 임의로 지출하는 것이다. 그걸 청와대에서 받아서 직원들에게 나눠 준다. 그런데 검찰은 원장이 청와대에 상납한 것이라고 했다. 개인적으로 억울하냐, 아니냐를 따질 일이 아니다. 법 적용에 문제가 있다. 박지원 전 원장도 청와대 있을 때 특활비를 받았다고 하지 않았나.”
―회고록을 쓴 배경은.
“뭘 쓸 생각이 없었는데 국정원장과 대선을 거치면서 왜곡되다 못해 비틀려 버린 우리 현대사를 바로잡는 차원에서라도 내가 걸어온 길과 내가 부딪치며 살아온 역사적 사실에 대한 기록을 남겨 놓아야겠다고 결심했다.”
―책에서 가족들과의 유대관계를 강조했는데.
“병법에 이르기를 장수는 출전 명령을 받으면 가족을 잊고, 전쟁터에 이르러서는 승부만 생각하고, 전투에 임해서는 생사를 잊는 거라 했다. 그런데 난중일기를 보면 이순신 장군은 전쟁터에서 매일 어머님 걱정, 가족 걱정, 심부름 왔다 간 노비 걱정을 하셨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는데 구치소에서 가족 사랑이 나라 사랑의 근본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자기 가족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이웃의 가족, 국민의 가족을 사랑할 수 있겠나.”
―군에서 신망이 두터웠는데 총장 퇴임 후 정치적 행보를 걸었다. 말들이 많았다. 혹자는 ‘보수 군심의 아이콘’으로 ‘박근혜 오른팔’이었다고 평한다.
“저는 선거나 정치는 모른다. 개인적인 토론 모임에 박 전 대통령을 초청했던 것이 인연이 된 듯싶다. 그쪽에서 도와 달라며 먼저 연락이 왔다. 대선 때도 캠프에 가입하지 않았다.”
―국정원장 시절 2007년 있었던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을 공개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파기했다는 문서다. 경솔하게 외교문서를 공개, 국정원을 정쟁의 한가운데로 끌어들였다는 비난이 컸다. 아직도 회의록 내용이 이적행위에 해당된다고 생각하나.
“그림으로 그려서 보여 주겠다. 왜 그런지.(그러고는 장황한 설명이 이어진다) 결론적으로 정상회담에서 거론된 NLL(북방한계선) 문제는 우리 국민들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영토와 영해를 수호하며 서해5도서 지역에 대한 주권 확립의 책무를 포기한 것이다. 명백한 이적행위에 해당되는 문서다.”
―박 전 대통령의 비선 실세 보고서를 올렸다가 국정원장에서 경질됐다는 얘기도 있는데.
“박 전 대통령이 최순실과 경제공동체다 뭐 이런 얘기들이 있었다. 하지만 국정원의 비선 실세 보고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박 전 대통령이 돈에 관해선 단돈 1원도 받은 게 없다는 것은 장담할 수 있다. 정치를 잘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노 전 대통령에 대한 기억은 어떤가.
“자신의 이념적 가치와 국익이 충돌했을 때 주저없이 국익을 택할 줄도 알았던 대한민국 좌파 대통령이었다. 감명을 받았던 적도 있다. 이라크 파병 결정이 대표적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과는 결이 다르다.”
―19대 통일한국당 대선 후보로도 출마했다.
“살던 아파트를 저당 잡고 그 반을 공탁금으로 내고 출마했다. 미친 짓으로 보였겠지만 문재인 후보가 당선되면 나라가 망할 것 같다는 위기감을 느꼈다. 40여년간의 군 생활과 국정원 재직 시 경험을 통해 깨닫게 된 이 나라의 현실과 좌파들의 실체를 알려야 한다는 책임감이 있었다.”
―북핵 문제는 어떻게 보나. 우리도 핵무장해야 하나.
“핵에 대응할 수 있는 가장 유효한 수단은 오직 핵뿐이다. 그렇지만 핵은 우리가 갖고 싶다고 해서 가질 수 있는 수단이 아니다. 현실적인 부담도 있다. 우리 국민들이 핵을 가지는 대신 북한처럼 국제적인 제재를 피해 거지처럼 사는 것을 감당할 수 있을 거라 보나. 차상위 수단으로 미국을 설득해 일본처럼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 권한을 가질 수도 있겠다. 유사시 빠른 시간 내 핵무장할 수 있다. 그다음이 지금의 연합억제전력의 확장이다. 우리나 미국이나 정권이 바뀌면 보장이 안 되는, 대단히 불안정한 수단인 것만은 분명하다.”
―한반도에선 평화보다 힘이 우선인가.
“클라우제비츠는 그의 저서 ‘전쟁론’에서 ‘유혈을 망설이는 측은 유혈을 불사하는 측에 의하여 반드시 정복된다’고 설파했다. 국가가 분쟁에서 평화를 유지하는 최선의 방법은 오직 무력이 뒷받침된 우세한 힘이다. 우리 스스로 국가를 지킬 수 있다면 좋겠지만 만약 그 결과가 참담하다면 생각을 달리해야 한다. 한·미동맹이 존재하는 이유다.”
―최근 육사 홍범도 흉상 이전 논란으로 군이 시끄러웠다.
“그게 왜 문제가 되는지 이해가 안 간다. 홍 장군은 민족의 독립을 위해 싸운 분이다. 소련 공산당 당원이기도 했다. 육사의 설립 목적은 독립군 양성 기관이 아니다. 1948년 정부 수립 후 국가를 지키기 위한 장교의 양성에 있다. 홍 장군 흉상은 독립기념관에 모시는 게 맞는다. 홍 장군 흉상을 육사에 두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부정하는 세력들의 어거지다.”
―해병대 병사 사망 사건으로 지휘 책임 논란도 있었는데.
“군에선 지휘책임의 한계라는 게 있다. 통상 2단계까지로 본다. 가령 사단장은 문제가 생겼을 때 연대장과 대대장까지를 책임진다. 군단장은 사단장과 연대장의 교육과 지휘 책임을 진다고 보는 것이 맞는다. 그 이상 확장에는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 보직을 뺏는 것도 처벌로 봐야 한다.”
―살아오면서 후회되는 순간은 없나.
“월남전에 소대장으로 참전, 부하들에게 숨진 적에게 확인 사살하지 말 것을 지시한 적이 있다. 그런데 부하 한 명이 죽은 줄 알았던 적이 쏜 총에 맞아 숨졌다. 내 명령이 과연 올바른 것이었는지 아직도 해답을 못 구했다.”
―후배 군인, 장교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은.
“군인은 군대에 복무하는 사람이다. 복무하는 사람은 반드시 집단의 이익에 봉사하기 위해 개인의 이익을 희생해야 한다. 그것이 복무하는 사람과 취직한 사람의 차이다. 군대는 준비된 힘으로 전쟁을 억제하고, 억제에 실패했을 때는 싸워 승리함으로써 국가를 보전하기 위해 존재한다. 군인의 역할이 무엇인지, 군인정신이 무엇인지, 지도자에게 필요한 자질이 무엇인지 항상 생각해야 한다. 1960년대부터 1980년대 후반까지 미국이 부를 20배 늘려갈 때 우리나라는 400배로 발전했다. 그러한 기적은 아마 다시는 보기 어려울 거다. 우리 부모가 오늘보다는 내일이라는 가치 아래 희생했기에 가능했다. 인권과 자유의 가치가 지켜지는 후손들의 미래를 위해 희생하는 모습을 보여 주길 바란다. 여러분의 부모님들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