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를 앞두면 표를 노린 선심성 정책이 으레 기승을 부리기 마련이다. 그런데 총선을 5개월 앞둔 요즘은 좀 더 유별나다. 포퓰리즘으로 차린 밥상이 여느 때보다 현란하다. 현금 살포성 사업 예산 늘리기는 기본이고, 법을 뜯어고치는 ‘대못 공약’도 서슴지 않는다. 무소불위 특별법도 쏟아진다.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가 내놓은 ‘김포의 서울 편입’ 공약이 방아쇠를 당겼다. 여권 입장에서 이 공약은 패색이 짙던 경기에서 한 방으로 분위기를 반전시킨 수훈갑이었다.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패배로 어수선했던 국민의힘은 전열을 정비할 시간을 벌었다. 당내에서는 2008년 총선 때 뉴타운 사업 공약으로 서울에서 40대 7로 압승하던 기억을 떠올리며 무릎을 치는 이들도 있었다. 그렇게 물 들어올 때 노를 젓는 심정으로 내놓은 2탄은 공매도 전면금지였다. 1400만 ‘동학개미’ 표심을 겨냥했다. 주식 시장이 열리기 직전인 일요일 돌연 발표했다. 월요일 장이 열리자 코스피는 역대 최대 상승 폭을 기록했고, 같은 날 코스닥에서는 ‘매수 사이드카’가 발동됐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다음 날 국내 증시는 급락했고, 코스닥에서는 ‘매도 사이드카’가 발동됐다. 예고 없이 시행된 공매도 금지는 증시 변동성만 키운 꼴이 됐다. 공매도 정상화가 글로벌 스탠더드라던 현 정부 입장은 무색해졌고, 한국 자본시장의 대외 신인도는 손상됐다.
보궐선거 완승으로 내년 총선 200석 운운하던 더불어민주당은 여당의 정책 드라이브에 당황한 듯 돌파구를 찾아 나섰다. 서울 지하철 5호선 김포 연장 사업의 예비타당성조사 면제(국가재정법 개정안), 1기 신도시를 위한 ‘노후계획도시 정비·지원 특별법’ 카드를 닥치는 대로 빼 들었다. 은행·정유사 ‘횡재세’ 도입도 밀어붙이고 있다. 예타 면제가 가져올 후폭풍이나 횡재세의 반시장주의적 요소는 아랑곳하지 않고 있다.
여야 텃밭 표심에 도움이 되는 달빛고속철도(대구∼광주 복선 고속철도) 건설 사업, 대구·경북(TK) 신공항 건설과 관련한 법안과 예산은 짬짜미한 것처럼 경제성 평가는 모르쇠로 일관하며 서로 손을 맞잡고 줄줄이 처리하고 있다.
연말 심의 과정에서 선심성 예산을 대폭 늘리는 데도 여야가 없기는 마찬가지다.
민주당은 국회 상임위원회에서 진행 중인 예산심의에서 원자력발전, 청년 일 경험 사업 등 ‘윤석열표 예산’은 대거 삭감했다. 대신 지역사랑상품권·새만금 등 자신들의 역점 예산을 대폭 증액했다. 반대로 국민의힘은 대학생 대상 아침 식사를 지원하는 ‘천원의 아침밥’과 명절 반값 여객선 운영 예산처럼 현금성 지원사업을 늘리는 데 공을 들였다. 이로 인해 당초 656조9000억원 규모였던 정부 예산안은 국회 심사 과정에서 2주 만에 9조원 가까이 늘었다.
요즘 들어 더 극성을 부리는 포퓰리즘은 진영에 갇힌 한국 정치 지형이 만든 괴물이다. 극성 지지층에만 기댄 양당이 총선용으로만 중도의 환심을 사려고 그들의 욕망에 불을 지피는 공약 개발에만 열을 올리고 있는 것이다.
포퓰리즘은 국가재정을 좀먹고, 미래 세대의 성장률을 잠식한다.
최근 포퓰리스트가 집권하면 경제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독일 킬 세계경제연구소의 마누엘 푼케 연구원은 ‘포퓰리스트 리더와 경제’ 논문에서 1900∼2020년에 나온 포퓰리즘을 주제로 한 770편의 논문과 기사, 책 등을 통해 51명의 포퓰리스트 정치인을 식별한 뒤 경제 성과를 분석했다. 그 결과, 포퓰리스트 집권 후 2년간은 국내총생산(GDP)에 큰 영향이 없지만 15년 후에는 포퓰리스트가 아닌 리더가 집권했을 때보다 GDP가 평균 10%가량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국가채무 비율은 15년 후 10%포인트 높아진 것으로 분석됐다. 한국도 이런 연구 결과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러나 선거를 앞둔 정치권에 스스로 포퓰리즘을 거두라고 당부하는 것은 무망하다. ‘욕망 열차’ 탑승권은 언제나 신기루로 끝났음을 잊지 않는 유권자들의 현명한 판단과 집단지성에 희망을 걸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