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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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한대 없던 美 노인, 50억원 나누고 떠났다

82세 홀트 별세하며 마을에 기부
TV·가구도 없이 생전 검소한 삶
“백만장자인 줄 몰라” 이웃들 놀라

늘 허름한 옷차림, 고교생들에게 운전을 가르쳐주면서도 자신은 자동차 없이 자전거나 잔디 깎는 기계를 타고 편의점을 오가는 모습, 가구나 TV도 없이 사는 검소한 생활….

미국 뉴햄프셔주에 있는 인구 4200명의 작은 마을 힌즈데일의 이동식주택공원에서 관리인으로 일하던 제프리 홀트(사진)에 대한 동네 사람들의 기억이다.

 

그가 지난 6월 82세 나이로 세상을 떠난 뒤 힌즈데일 주민들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알고 보니 홀트가 백만장자였고, 동네 발전을 위해 거액을 쾌척하기까지 했다는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그의 유언장에는 ‘교육, 건강, 레크리에이션, 문화 분야에서 지역사회에 도움이 되도록 380만달러(약 50억원)를 힌스데일 마을에 기부한다’는 짤막한 지침이 담겨 있었다고 AP통신이 21일(현지시간) 전했다.

통신에 따르면 차를 타고 거리를 지나며 가끔 고인과 손을 흔들어 인사를 나눴다는 스티브 디오리오는 “그가 그렇게 성공한 사람이었을 줄은 아무도 몰랐을 것”이라며 “그에게 가족이 많지 않다는 건 알았지만, 그렇더라도 자기가 살던 마을에 (유산을) 남긴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선물”이라고 말했다.

신탁에 예치하기만 해도 매년 15만달러(약 2억원) 이자가 나오는 거액을 홀트가 어떻게 모았는지에 대해서는 스티브와 고인의 여동생이 어렴풋이 짐작할 뿐이다. 스티브는 고인이 수백 대의 모형 자동차와 기차, 역사책, 음반 등을 수집했다며 젊은 시절 곡물 공장 생산관리자로 일하며 모은 돈을 투자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여동생 엘리슨 홀트(81)는 “어려서부터 부모님으로부터 돈을 낭비하지 말고 투자해야 한다는 얘기를 들으며 자랐다”며 “오빠는 원하는 것도 별로 없었고, 자기는 모든 걸 다 가졌다고 생각하며 살았을 것”이라고 했다.

이제 힌즈데일 주민들은 홀트가 남긴 돈을 허투루 쓰지 않기 위해 지혜를 모으고 있다. 주민들은 시청 시계를 새로 갈자거나 건물 보수에 쓰자, 온라인 운전교육 강좌를 개설하자는 아이디어 등을 내놓았다. 투표에 참여하는 것을 중시했던 그를 기리며 새로운 개표기를 사자는 의견도 나왔다.

마을 행정관 캐스린 린치는 홀트의 유산을 “그가 그랬던 것처럼 매우 검소하게 사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태영 기자 anarchy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