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은 당초 28일 1회로 진행될 예정이었지만, 티켓 판매 직후 쏟아진 한국 팬들의 관심에 27일 공연을 추가했다. 당시 갤러거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한국어로 “너네 노래하는 거 보려고 공연 추가”라고 적었다. 27일 공연 역시 매진됐고 이에 25일 서울 영등포 명화 라이브홀에서 스페셜 공연을 열었다. 역시 이번에도 “특별공연 추가, 너네 나라에 오는 건 끝내주는 일이야”라고 갤러거는 한국어로 또다시 글을 남겼다. 25일 1600여명, 27일과 28일 1만6500여명으로 3일간 1만8100여명이 그의 공연을 찾았다.
갤러거는 영국 대표 록 밴드 오아시스의 ‘치프(대장)’로 1990년대 영국 대중음악계를 이끌었다. 2009년 오아시스 탈퇴 이후에도 밴드 ‘노엘 갤러거 하이 플라잉 버즈’를 결성하고 음악 활동을 이어 왔다. 전 세계 음악 시장에서 많은 사랑을 받는 것은 물론 한국에서도 그의 팬이 두텁다. 그가 이미 아홉 번이나 한국을 찾았다는 사실만으로도 그 인기를 증명할 수 있다.
특히 이날 공연에서 그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공연은 오후 8시에 시작했지만, 일찌감치 공연장은 팬들로 가득했다. 갤러거가 밴드 멤버들과 함께 등장하자마자 팬들은 함성을 질러 그를 반겼다. 이어 ‘프리티 보이(Pretty Boy)’로 시작된 공연은 ‘카운실 스카이스’, ‘오픈 더 도어, 시 왓 유 파인드(Open the Door, See What You Find)’ 등을 쉬지 않고 연주했다.
곡이 끝날 때마다 객석에서는 “노엘”을 연호했고, 갤러거는 “생큐(고마워)”로 화답했다. 무대는 특별한 장치가 없었다. 중앙 큰 전광판에서는 곡에 따른 다채로운 영상이 상영됐고, 좌우에 위치한 전광판에는 갤러거와 밴드 그리고 관객 모습이 비쳤다.
갤러거도 특별히 꾸미지 않았다. 어두운 계통의 가죽 재킷과 바지를 입고 어쿠스틱 기타와 일렉트릭 기타를 번갈아가며 연주했다. 오롯이 목소리와 연주만이 다였던 공연이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음악’이 가진 본질에 집중할 수 있었다. 물론 갤러거를 비롯해 밴드의 뛰어난 실력이 뒷받침됐기 때문에 가능했다.
갤러거는 오아시스 시절 발표했던 히트곡들도 연주했다. ‘고잉 노웨어(Going Nowhere)’, ‘디 임포턴스 오브 빙 아이들(The Importance of Being Idle)’, ‘더 마스터플랜(The Masterplan)’ 등을 불렀다. 이에 “너네 노래하는 거 보려고 공연 추가”라고 했던 갤러거의 글처럼 팬들은 떼창을 선보이는가 하면 ‘하프 더 월드 어웨이’에서는 박자에 맞춘 박수를 단체로 선보였다. 이런 반응에 갤러거는 “생큐”, “언빌리버블(믿을 수 없어)” 등을 연발했다.
관록 넘치는, 재치 있는 진행도 돋보였다. 갤러거는 기타를 치고 싶다는 팬에게 “나랑 같이 기타를 치고 싶어?”라고 물은 뒤 곧바로 장난이었다고 말했다. “다음 노래는 너를 위한 거야”라고 말하며 팬들을 환호하게도 했다.
정규 공연이 끝나고 갤러거가 무대를 내려가자 팬들은 ‘원더월(Wonderwall)’을 떼창하며 그를 불러냈다. 이에 갤러거는 밥 딜런이 작곡한 ‘더 마이티 퀸(The Mighty Quinn)’으로 앙코르곡을 시작했다. 이어 오아시스의 대표 히트곡인 ‘리브 포레버(Live Forever)’와 ‘돈트 룩 백 인 앵거(Don’t Look Back in Anger)’를 불렀다. 팬들은 역시나 떼창으로 화답해 가수와 팬 8200여명이 함께하는 모습을 선사하며 공연은 마무리됐다. 갤러거는 마지막 인사로 “이제는 가야 한다”며 “우리는 곧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다”라고 말해 팬들의 환호를 받으며 진짜 무대를 내려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