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메뉴 보기 검색

저조한 투자·잦은 감독 교체… 예고된 ‘명문’ 수원 삼성의 ‘몰락’

프로축구 ‘명가’ 수원 삼성이 1995년 창단 이래 사상 처음으로 K리그2(2부)로 강등되는 굴욕을 맛봤다.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났지만, 모기업의 저조한 투자와 올해 잦은 사령탑 교체 등 혼돈의 시간을 보낸 수원의 예고된 몰락이었다.

 

수원은 지난 2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하나원큐 2023  K리그1 최종 38라운드 홈 경기에서 강원FC와 0-0으로 비겼다. 최하위(승점 33)에 머물며 시즌을 마친 수원은 승강 플레이오프(PO) 기회를 잡지 못하고 ‘다이렉트 강등’을 당했다. 다음 시즌은 1부 무대가 아닌 K리그2에서 경쟁하며 승격을 노려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굴지의 글로벌 기업 삼성을 등에 업고 1995년 창단한 수원은 K리그에서 4회(1998, 1999, 2004, 2008년), 대한축구협회(FA)컵 5회(2002 2009 2010 2016 2019년) 우승한 전통의 명가다. 한때 스페인 명문 레알 마드리드와 비교되며 ‘레알 수원’이란 화려한 수식어도 얻었다. 또 K리그에서 가장 열정적이고 많은 팬을 거느린 인기 구단으로도 꼽힌다. 홈구장의 애칭인 ‘빅버드’는 많은 원정팀이 부담을 느낄 만큼 열띤 응원이 펼쳐지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날도 2만4932명의 팬이 빅버드를 찾아 팀의 강등을 막기 위해 간절한 응원을 보냈으나 수원은 끝내 승리를 따내지 못하고 강등됐다.

 

그러나 수원의 이런 몰락은 어느 정도 예견됐다는 지적도 있다. 모기업 삼성의 지원이 대폭 줄면서 알찬 선수 보강이 이뤄지지 못했고, 감독을 여러 차례 교체하며 선수단 운영에 안일했다. 당장 최근 수년간 하위권에 머물며 암울하게 시간을 보냈다. 2014~2015년 연속 리그 2위에 올랐던 수원은 2019년 8위로 추락하더니, 2020년 8위, 2021년 6위, 2022년 10위에 머물렀다. 지난해엔 2013년 승강제 도입 후 처음으로 승강 플레이오프(PO)를 치렀고,  FC안양과 1, 2차전에서 합계 스코어 2-1로 앞서 겨우 강등을 면했다.

 

수원은 올 시즌을 앞두고 명예 회복을 다짐했다. 수원의 잔류를 이끈 이병근 감독 체제에서 베테랑 김보경과 안양에서 뛴 아코스티, 브라질 미드필더 바사니 등을 영입해 전력을 보강했다. 하지만 이 역시 팀을 바꿀 만큼의 영입은 아니었다. 시즌 초반부터 성적이 곤두박질쳤고, 이병근 감독이 물러난 뒤 최성용 코치에게 대행을 맡겼지만 분위기는 여전했다.

 

결국 강원을 이끌다 무직 상태로 있던 김병수 감독에게 수차례 러브콜을 보낸 끝에 새 감독으로 선임했다. 그러나 김병수 감독도 올해 5월 팀을 맡아 12라운드부터 31라운드까지 20경기를 치러 4승5무11패의 초라한 성적표를 남기고 9월 말 경질됐다.

 

수원의 마지막 카드는 구단의 레전드이자 플레잉 코치로 활동하다 최근 코치 역할에 집중한 염기훈 감독대행 체제였다. 염 대행은 주장단을 교체하고 지원스태프 역할을 조정하는 등 분위기를 쇄신하며 시즌 막바지 잔류 희망을 살렸다. 하위권에서 경쟁하던 수원FC를 3-2로 눌렀고, FC서울과 슈퍼매치에서 1-0 승리로 2연승을 달렸다.

 

결국 강등 향방은 최종전에서 결정되도록 이끌었지만, 최종 라운드에서 강원을 이기지 못하면서 잔류 희망은 사라졌다. 올해만 4명의 사령탑의 손을 거친 수원은 시즌 내내 잡음 속에 방황하다 결국 강등됐다. 염 대행은 “경기장에서 뛰는 건 선수들인데, 너무 많은 변화가 있어 혼란스러웠을 것이다”며 “그런 부분이 선수들에게 영향을 준 것 같다”고 아쉬워했다.

 

구단의 첫 강등을 두 눈으로 지켜본 빅버드에 모인 팬들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팬들은 불붙인 홍염을 그라운드로 던져 붉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수십 명의 팬은 구단 사무실로 향하는 입구 쪽에서 고성을 지르며 경찰과 대치하거나 구단 버스가 나가는 길을 약 2시간 동안 가로막아 분노를 표출했다.


장한서 기자 jhs@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