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찌감치 전석 매진에 현장 프로그램 북(책자)은 금세 동나고, 공연장 로비는 기념 사진 촬영 인파로 북새통이고, 공연장은 아이돌 콘서트장을 방불케하고….
지난달 24일 대구 수성아트피아부터 25일 대전 예술의전당, 26일 서울 예술의전당, 29일 세종문화회관, 지난 1일 롯데콘서트홀까지 공통적으로 벌어진 현상이다. 지난해 밴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역대 최연소 우승을 차지한 이후 세계적인 클래식 스타로 떠오르고 열성 팬이 급증한 피아니스트 임윤찬(19)의 힘이다. 그 기세에 한국을 대표하는 지휘자 정명훈(70)과 ‘독일 전통 사운드의 계승자’로 불리는 130년 역사 뮌헨 필하모닉(뮌헨필)의 노련함이 더해진 5차례 공연은 그야말로 명불허전의 무대였다. 이들은 베토벤(1770∼1827)의 피아노협주곡 4번 G장조와 대작인 3번(‘영웅’) 교향곡을 들고 나와 관객들이 베토벤 음악의 진수를 맛볼 수 있도록 이끌었다.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마지막 무대에서도 임윤찬과 정명훈, 뮌헨필은 지친 기색 하나 없이 환상적인 호흡으로 눈부신 연주를 선보였다.
임윤찬이 들려준 베토벤 피아노협주곡 4번은 그의 천재성과 강점을 재확인해 줬다.
베토벤이 요제피네 폰 다임 백작부인에게 연정을 품었지만 신분 차이로 사랑을 이루지 못한 30대 시절 만든 이 곡은 베토벤의 협주곡 중 가장 온화하고 유려하단 평가를 받는다. 사랑에 들뜨면서도 결실을 맺기 힘든 현실에 고뇌하던 베토벤의 복합적인 심정이 고스란히 악보에 담겼다.
임윤찬은 오케스트라가 먼저 연주하는 다른 협주곡과 달리 피아노가 홀로 속삭이며 시작하는 1악장 도입부에서부터 관객 몰입도를 끌어올렸다. 이후 카덴차(무반주 독주) 구간에서도 황홀한 기교와 압도적인 에너지로 무대를 장악했다. 연주 내내 음표 하나하나가 그의 손끝에 닿아 살아 움직이면서 모든 소리가 영롱하고 또렷하게 들렸다. 연주할 때마다 자신보다 음악 자체의 매력을 도드라져 보이게 하는 임윤찬의 신비로운 표현력이 베토벤 음악에서도 빛났다. 어떤 강약과 빠르기로 피아노를 치든 정교하고 자연스럽게 맞춰 주는 뮌헨필의 내공이 임윤찬의 연주에 날개를 달아 주었다.
협연을 마치고 정명훈 품에 안긴 임윤찬은 관객들의 기립 박수와 갈채가 쏟아지자 앙코르 곡을 두 개나 선물했다. 먼저 쇼팽(1810∼1849)이 자신의 곡 중 가장 아름답다고 한 것으로 알려진 에튀드(연습곡) 3번(이별의 곡)으로 감동을 안겼다. 끝난 줄 알았던 관객들은 그가 다시 피아노 앞에 앉자 환호성을 질렀다. 임윤찬은 직전 두 차례 서울 공연의 앙코르 곡이었던 리스트(1811∼1886)의 녹턴 3번(사랑의 꿈)으로 관객 가슴을 촉촉이 적시고 무대를 떠났다.
2부 무대에서도 감동은 이어졌다. 잠시 숨을 고른 정명훈과 뮌헨필은 완벽한 호흡으로 ‘영웅 교향곡’의 맛을 제대로 살려냈다. 뮌헨필은 5년 만인 이번 내한공연에서 바이올리니스트 클라라 주미 강과의 두 차례 협연까지 8일 중 7일이나 무대에 오르는 강행군을 했지만 전혀 흐트러짐이 없었다. 악기군별로 투명하고 명료한 음색과 최상의 균형감으로 능숙한 연주를 뽐냈고, 정명훈은 악단 모든 파트가 유기적으로 진가를 발휘하도록 매끄럽게 조율하며 관객의 탄성을 자아냈다.
뮌헨필이 앙코르 곡으로 들려준 민요 ‘아리랑’(김바로 편곡)은 특별함을 더했다. 정명훈은 아리랑 연주 전 뮌헨필 같은 해외 명문 악단이 일본과 중국에 먼저 들르지 않은 채 한국에서만 일곱 번 공연하고 돌아가는 것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정명훈이 “우리나라가 많이 발전하고 음악 청중도 크게 늘었기 때문에 그렇다”면서 “이 곡은 대한민국 전체에서 모르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을 것”이라며 아리랑을 소개하고 연주하자 공연장은 막판까지 달아올랐다. 정명훈도 벅찼는지 오른손 주먹으로 가슴을 두드리며 관객 환호에 화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