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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훈 TNO 한국 대표 “양자 국가주의 본격화 땐 양자컴도 금수 가능성” [심층기획-‘기정학(技政學) 시대’ 강소국 네덜란드를 가다]

“개방적 큐텍도 원천기술 공유 안 해
후발주자 한국, 추격자 전략은 한계
기술혁신 선도 전략으로 전환 필요”
“한국이 처음 반도체 사업을 시작했을 때 일본 도시바 기술자들을 특급호텔에 모셔다 놓고 기술을 알려달라고 구걸하다시피 했죠. 양자 기술도 그렇게라도 배워야 합니다. 누구도 핵심 기술은 팔려고 들지 않을 테니까요.”

 

박병훈 네덜란드 국립응용과학연구소(TNO) 한국 대표는 지난달 30일 세계일보와의 화상인터뷰에서 “양자 분야의 핵심 원천기술을 가졌느냐, 아니냐로 국가의 명운이 갈리게 될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박 대표는 양자 기술이 미래 기술패권의 핵으로 떠오르면서 ‘양자 국가주의(Quantum Nationalism)’가 현실화하고 있는 상황을 지적하고, 원천기술 확보의 시급성을 함께 강조했다. 그는 “개방성이 높은 큐텍마저 내부 역량이 부족한 분야에서만 파트너십을 활성화하고, 핵심 기술 분야에서는 다른 나라와 협업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박병훈 네덜란드 국립응용과학연구소(TNO) 한국 대표.

양자 국가주의가 본격화한다면 미국의 중국에 대한 반도체 수출 통제와 같이 양자컴퓨터도 얼마든지 수출 금지 품목에 오를 수 있다. 박 대표 역시 “완성형 양자컴퓨터를 개발한 나라는 패권을 얻게 된 셈인데 그걸 다른 나라에 팔겠다고 나서겠느냐”라며 “한국은 빨리 어깨너머로라도 기술을 배우고, 이를 시도해서 자체적으로 개발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박 대표에게 한국의 추격 전략을 물었다. 그는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키스트)과 같은 국책연구기관을 큐텍처럼 활용할 수 있다”며 “키스트가 정부 예산을 책임지고 운용하며 다른 나라 연구소나 기업들과 전략적 파트너십을 주도적으로 맺으면 좋을 것 같다”고 답했다.

 

적절한 협력 대상으로는 네덜란드, 프랑스, 캐나다를 꼽았다. 박 대표는 “네덜란드, 프랑스는 양자 관련 원천기술이 워낙 많은 나라고 캐나다는 양자컴퓨터를 상용화하려는 노력을 많이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후발주자 한국은 파트너십을 맺을 수 있는 분야를 찾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미 다른 기업들이 선점한 분야는 뒤늦은 진입이 쉽지 않다.

 

박 대표는 “한국의 첨단산업 전략 자체를 바꿔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나라는 그동안 패스트 팔로어(빠른 추격자) 전략으로 선진국의 기술력을 따라잡으며 성장해 왔지만, 이제는 그 전략이 먹히지 않는다”며 “혁신을 최우선으로 추구하는 선도자 전략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지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