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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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은수의이책만은꼭] 실내 식물, 집에서 즐기는 자연

열대숲에서 진화한 인류 ‘식물사랑’ 필연
19세기 다양한 교배종 탄생, 오늘날 이르러

완연한 겨울을 맞아 ‘식물 집사’들 마음이 바쁘다. 바깥에 내놓았던 화분을 햇볕 잘 드는 거실 창가 쪽으로 들이고, 가습기를 놓아 습도를 조절하고, 때때로 분무기로 물을 뿜어주는 등 해야 할 일이 넘친다. 인류는 열대의 숲에서 진화했기에, 식물 없인 행복을 누리지 못한다. 멍하니 녹색 이파리들을 바라보기만 해도 피로와 스트레스는 줄어들고 집중력은 회복된다. 예부터 인류가 실내 식물을 길러서 삶의 반려로 삼은 이유이다.

마이클 몬더의 ‘실내 식물의 문화사’(교유서가 펴냄)에 따르면, 실내 식물에 대한 사랑은 인류의 공통 특징으로, 시대와 지역을 초월해서 널리 나타난다. 집 안에 식물을 들임으로써 인간은 자연에 대한 사랑과 우정을 표현하고, 아스팔트와 콘크리트로 뒤덮인 인공 세계에서 녹색 생명에 대한 내재적 욕구를 드러낸다.

구석기 무덤에서 시체와 함께 히아신스가 부장된 데에서 알 수 있듯이, 인간은 까마득한 옛날부터 식물의 꽃과 잎을 통해 삶과 죽음을 기념하고 행운과 축복을 기원해 왔다. 고대 문명에서 신전과 왕궁은 흔히 살아 있는 식물로 장식되곤 했다.

이집트 여성 파라오 하트셉수스는 자기 신전을 꾸밀 유향나무를 구하려고 먼 나라로 원정대를 파견했다. 이는 공식 기록에 나오는 첫 번째 실내 식물의 사례에 해당한다. 낯설고 이국적인 식물을 구해서 거주 공간을 독특하게 꾸미려는 열정, 즉 이국 취향은 오늘날에도 실내 식물을 기르는 우리의 마음을 지배한다. 주변의 많은 이들에게 실내 식물은 싼값에 기를 수 있는 진기하고 이국적인 식물을 뜻한다.

이 때문에 실내 식물은 대부분 열대 또는 아열대 지방에서 유래했다. 서유럽에서 실내 식물 문화는 중세 카네이션 재배에서 시작한다. 겨울이 되면 카네이션을 따뜻한 집 안으로 옮겨서 얼어 죽지 않게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내에 다양한 식물을 들여서 본격적으로 기른 건 17세기 초부터다. 당대 영국의 정원 관리 지침서는 이야기했다. “깔끔한 갤러리, 훌륭한 실내 공간 등을 향긋한 허브와 꽃, 그리고 가능하면 열매로 장식하는 건 기분 좋은 일이다.” 이 시기에 온갖 꽃과 신기한 풀을 머나먼 식민지에서 살려 들여와 집에서 기르는 게 제국의 귀족 사이에 큰 인기를 끌었다. 무늬알로에, 드라세나 등이 이때부터 유행했다.

이후 실내 식물 기르기는 점차 시민의 건전하고 보람찬 취미로 변해 갔다. 18세기엔 방이나 실내 공간을 화분 또는 화병으로 장식하는 게 런던 시민들의 새로운 관심사로 자리 잡았고, 19세기엔 양묘와 교배 기술의 발전과 함께 실내 식물 기르기가 시민들 사이에서 대유행했다. 베고니아, 아르카시아 등 오늘날 우리가 기르는 실내 식물 다수는 이 시대에 태어났다. 빅토리아시대의 양묘업자들은 진귀한 식물을 세상에 선보여서 큰 부를 거머쥐려는 악마적 열정을 품고, 종교 교리를 무시한 채 여러 식물을 교배해 자연에 없는 새로운 종을 빚어냈다.

오늘날 실내 식물은 세 축으로 발전 중이다. 전통 원예 기술, 즉 인간의 안목과 비전이 아름다움을 갖춘 식물을 길러내는 예술적 측면, 유전학과 식물생리학을 이용해서 참신한 식물을 개발하는 과학적 측면, 전 세계를 잇는 거대 공급망을 통해 특정 식물의 유행을 창출하는 산업적 측면이다. 인간과 식물의 공진화에 이 세 축이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도록 관심을 기울이면 좋겠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