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순투성이인 사회주의 본질을 모른다면 머리가 나쁜 것이고 알고도 추종한다면 거짓말쟁이다.” 프랑스 정치사회학자 레이몽 아롱이 1955년 저서 ‘지식인의 아편’에서 한 말이다. 전체주의, 인권 경시, 창의성 말살, 계획경제의 비효율. 이런 사회주의 체제의 모순들에 애써 눈감던 당시 좌파 지식인들의 위선과 무지를 질타했다.
아롱의 경고가 나온 지 36년 만인 1991년 소련식 사회주의는 유물박물관으로 가는 운명을 맞는다. 내부 모순이 폭발해 체제의 효용가치를 상실한 것이다. 애초부터 사회주의는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라는 강력한 무기를 장착한 자본주의의 적수가 되기에는 역부족이었는지 모른다.
국내 주체사상파(주사파)들을 돌아보게 된다. 아롱의 잣대로 보면 주사파들은 어떤 존재일까. 붕괴는 면했지만 북한은 3대 세습 왕조가 유지되는 가장 퇴행적인 사회주의 국가다. 그런데도 친북 성향을 고수하고 있다면 머리가 아주 나쁘거나 심하게 거짓말을 하는 집단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
해산된 통합진보당(통진당)의 주도 세력이자 국내 대표적 주사파인 경기동부연합(경기동부)의 기세가 날로 커지고 있다. 지난 4월 전주을 국회의원 재선거에서 경기동부 출신 진보당 강성희 후보가 당선된 데 이어 양경수 민노총 위원장이 지난달 28일 재선됐다. 민노총 산하 택배노조 진경호 위원장도 경기동부 출신이다. 민노총이 경기동부의 놀이터가 된 판국이다. 경기동부가 2014년 헌법재판소의 위헌정당 결정으로 통진당이 해산된 이후 9년 만에 재기에 성공했다고 표현해도 과하지 않다.
양 위원장은 지난 3년간 조합원이 100만명이 넘는 조직을 노동자 권익 보호보다 정치 투쟁에 몰두하도록 오도했다. 앞으로 반정부·친북·반미 투쟁의 수위가 더 높아질 것은 불문가지다. 그가 당선 일성으로 “윤석열 정권 퇴진”을 밝힌 것이 이런 분석을 뒷받침한다. 강 의원은 지난달 30일 국회가 채택한 ‘중국의 북한이탈주민 강제북송 중단 촉구 결의안’ 표결에 기권했다. 당연히 예상됐던 북한 편들기다.
내란음모사건으로 징역 8년을 복역한 이석기 전 통진당 의원이 이끄는 경기동부는 성남의 지역 노조와 용인·성남·수원 지역 대학교 학생회 출신 중심의 조직이다. 문제는 경기동부가 1998년 이적단체 판결을 받은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을 장악했고 경기동부와 한총련 출신들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주변에 포진해 있다는 점이다.
이들의 연결고리는 2010년 성남시장 선거 때 민주당 후보였던 이 대표가 경기동부의 핵심인 김미희 전 민주노동당 최고위원과의 후보 단일화를 통해 당선되면서 형성됐다는 게 전문가들 분석이다. 당시 이 대표는 시장 인수위원회 위원장에 김 전 최고위원을 임명했다. 민경우 대안연대 상임대표는 “당시 경기동부연합이 주사파라는 것은 충분히 알려져 있었다”며 “지지기반이 부족했던 이 후보는 경기동부의 영향력과 세력을 중시해 손을 잡았고 경기동부는 이 후보를 징검다리로 세력을 확장할 기회를 얻었다고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대표가 경기동부와 한총련의 이념을 내재화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경기동부의 세 확산 도구 논란이 빚어지는 건 국가안보를 책임진 대통령이 되겠다는 정치인에게 결코 이익이 될 수 없다. 친이재명계 한총련 출신들이 내년 4월 총선에 잇따라 출사표를 던지는 것도 마찬가지다.
출사표 선봉에 선 것은 1997년 한총련 5기 의장을 지낸 강위원 전 경기도 농수산진흥원 원장이다. 1997년 한총련 산하 광주·전남 지역 총학생회연합 의장을 지낸 정의찬 전 경기도 수원월드컵경기장관리재단 사무총장과 1998년 한총련 조국통일위원장을 지낸 이석주 ‘촛불백년경기이사람’(이재명지지 3040모임) 상임대표 등도 뛰고 있다.
이 대표가 총선 인재 영입을 위한 당 인재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것은 이들의 공천 가능성을 높인다. 허나 프락치 오인치사 등 폭력·반인권·친북 사건 전력자들을 공천하는 게 득표전에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잃는 게 더 많은 패착이 되기 십상이다. 이 대표는 경기동부, 민노총, 한총련과 엮일수록 국민들의 의구심만 커진다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