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메뉴 보기 검색

‘범법소년’ 면죄부에 공분 크지만… ‘낙인효과’ 우려도 많아 [뉴스 인사이드-소년범 처벌 강화 논란]

소년 범죄 건수 늘고 갈수록 흉포화 추세
‘옥상 돌 투척’ 사망사건 계기 논의 재점화

“현행법 악용해 치안유지 기능 조롱” 지적
형사처벌 연령하향 법안 등 국회 계류 중

대법 “근본적 해결책 될 수 없다” 부정적
“美선 부작용 심해 연령상향 선회” 반론도

#1. 지난달 17일 서울 노원구의 한 아파트 고층에서 8세 초등학생이 돌을 던져 배우자를 부축하며 길을 가던 70대 남성이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러나 가해자의 연령이 만 8세로 형사법상 처벌 근거가 없는 ‘범법소년’에 해당하기 때문에 가해자에 대한 처벌 없이 사건은 곧 종결될 예정이다.

 

#2. 2015년 10월에도 유사한 사건이 있었다. 경기 용인시 수지구의 한 아파트 옥상에서 초등학생 2명이 벽돌을 던져 50대 여성 주민을 숨지게 한 것이다. 함께 있던 20대 남성도 두개골이 함몰되는 중상을 입었다. 그러나 가해 학생은 당시 나이가 만 9세로 만 10세 미만인 ‘범법소년’에 해당해 처벌을 받지 않았고 함께 있던 다른 학생만 만 11세로 촉법소년에 해당해 과실치사상 혐의로 법원 소년부에 송치됐다.

 

 

8일 세계일보 취재에 따르면 경찰은 노원구 사건에 대한 조사를 사실상 종결했고 변사사건 종결에 맞춰 곧 최종적으로 사건을 종결할 방침이다. 가해 아동이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은 채 사건이 마무리되면서 소년범 처벌 강화에 대한 사회적 논란에 다시 한 번 불이 붙었다. 그간 소년범에 의한 강력범죄가 발생할 때마다 우리 사회에서는 소년범죄 기준 연령 조정 등 처벌 강화에 관한 논쟁이 불거졌다.

◆해마다 늘어나는 촉법소년

갈수록 소년범죄가 흉포해지고 발생 건수가 늘어나는 현상과 맞물려 논쟁은 한층 격렬해지고 있다.

촉법소년 수는 해마다 늘어나는 추세로 파악된다. 세계일보가 경찰청으로부터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달 29일을 기준으로 올해 들어 법원 소년부에 송치된 촉법소년 수는 1만8162명에 달했다. 이 중 살인·강도·강간·추행·방화 등 강력범죄를 저지른 경우는 754명이었고 절도가 8653명, 폭력 4520명 등이었다.

소년부에 송치되는 촉법소년 수는 최근 6년간 지속해서 증가 추세다.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2018년 7364명이었던 촉법소년 수는 2019년 8615명, 2020년 9606명으로 늘어났고 2021년에는 1만1677명으로 1만명을 넘겼다. 지난해에는 1만6435명으로 전년과 비교해 급증했다. 올해는 11월 말 기준으로 벌써 1만8162명을 기록했다.

현행법에 따르면 범죄를 저지른 소년은 세 연령대로 분류된다. 만 14세 이상 19세 미만인 범죄소년은 형사처벌의 대상이 되지만 타당하다고 판단되는 경우 형사재판을 받는 대신 법원 소년부로 송치돼 보호처분을 받을 수 있다. 만 10세 이상 14세 미만인 ‘촉법소년’의 경우 형사처벌은 받지 않고 소년법상 보호처분만을 받게 된다. 마지막으로 만 10세 미만의 ‘범법소년’은 형사처벌과 보호처분 모두 대상이 되지 않아 입건 자체가 이뤄지지 않다 보니 통계조차 관리되지 않는다.

◆처벌 강화 여론 비등에도 발의 법안 계류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1대 국회 들어 소년범죄 처벌 강화와 관련해 발의된 법안은 총 19건으로 파악된다. 형사처벌 연령의 기준을 만 14세에서 만 13세로 하향해야 한다는 내용의 정부발의안도 있다. 이들 법안은 모두 소관 상임위원회인 법제사법위원회에서 계류 중이다. 지난달 15일에도 법사위 법안심사소위에 소년범죄 처벌 강화 법안 여러 건이 상정됐지만 관련 논의는 이뤄지지 않았다.

별다른 진척은 없지만 국회에서 이처럼 소년범죄 처벌 강화 관련 법안 발의가 많았던 것은 여론의 공감대가 높았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지난 7월 형사처벌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점을 악용해 공권력 행사를 방해하는 소년범들을 보호처분 대상에서 배제해 형사처벌 받도록 하는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의원은 “소년법의 적용을 받아 형사처벌을 받지 않는 소년들이 이 점을 악용해 수사기관의 정당한 공권력 행사를 방해하고 치안유지 기능을 조롱하면서 이로 인한 국민의 공분이 매우 크다”고 법안 발의 이유를 설명했다.

김 의원은 “소년들이 스스로 스스로 성장하고 잘못을 뉘우치고 개선될 수 있다는 가능성은 인정해야 한다”면서도 “지금과 같이 14세를 기준으로 일괄적인 보호처분을 하는 것은 상황을 개선하지 못할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그러면서 “소년들이 과거보다 더 빨리 성숙해지고 세상을 받아들이는 속도도 빠르기 때문에 이에 따라 결국 촉법소년의 연령도 하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창현 한국외국어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소년범죄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과 주목을 받기 위해서라도 형사 미성년자 연령을 낮추는 것은 필요하다. 범죄 예방 내지는 일종의 교육 효과를 위해 필요하다고 본다”며 “입법 기관인 국회에서 빨리 해결해줘야 하는 문제인데 지금은 크게 관심이 없는 것 같아 아쉽다”고 말했다.

◆“연령 논의는 하수…교화 제도 정비부터”

그러나 연령조정이 소년범죄 예방의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의견도 상당하다. 대법원 법원행정처 역시 촉법소년 연령조정 법안에 대해 촉법소년 나이를 낮추는 것은 유엔 아동권리위원회 권고와 맞지 않고, 근본적 해결이 될 수 없다는 의견을 국회에 제출한 바 있다.

연령조정이 아니라 다른 해결책을 찾는 데 집중해야 소년범죄를 예방할 수 있다는 전문가 의견도 많다. 지난해 소년범에 관한 국내외 논의와 상황을 다각도로 조명한 ‘시대 변화에 따른 소년법 및 관련 규정 개정방안 연구’를 이끈 윤해성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연령을 낮춰 처벌을 강화하자는 주장은 쉬운 길일 뿐이고 하수”라고 잘라 말했다. 윤 연구위원은 “일부 학자들이 ‘미국은 연령을 낮추고 있다’고 주장하며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고 얘기하는데 그건 10년 전 이야기다. 미국은 과거 연령 하향 조정을 했던 것의 부작용이 심해져 지금은 오히려 연령 상향 정책을 취하고 있다”며 “어린 소년들을 성인 교도소로 보냈더니 자살하거나 오히려 성인 범죄자에게 나쁜 것을 배워 나와 갱단에 들어가거나, 재범률이 굉장히 높아지는 등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법무부 출신 윤용범 청소년행복재단 사무총장도 연령조정에 따른 처벌 강화는 나중의 문제이고, 부모 의무 교육과 의료 전문 소년원, 불안·우울 소년범에 대한 치료비 지원 등의 제도를 마련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말했다. 그는 ‘낙인효과’의 무서움을 수차례 강조하며 “실제로 범죄를 저지른 소년들을 만나보면 범죄라는 의식조차 없이 가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그저 먹고살기 위해 생활형 범죄를 저지른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설명했다.


박지원·정지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