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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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준 세종연구소 이사장 “9·19 합의 폐기는 국방 태세 정상화… 전면전 가능성은 희박” [세상을 보는 창]

北, ICBM·전술핵무기 개발 적극 나설 것
南, 美 핵잠 기항 등 확장 억제 강화해야
한·중 관계, 주권국가로 자주 외교 중요
한·일은 미래 내다보고 협력 확대 필요

신냉전, 자유민주·전체주의 진영 싸움
中, 대만 침공시 北도발 부추길 가능성
美 군사력 분산으로 南 돕지 못할 우려
韓, 우크라·이스라엘 전쟁 승리 도와야

한반도에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북한은 9·19 남북군사합의 파기 후 비무장지대(DMZ) 내 감시초소(GP)를 복원하고 서해 해안포 포문도 대거 개방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용준 세종연구소 이사장은 “북한이 국지적 군사도발을 일으킬 수는 있겠지만 전면전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했다. 이 이사장은 “북한이 고도의 경제난, 유류난, 식량난 탓에 대규모 군사충돌을 감내할 여력이 없고, 대남 도발 때 과거와 달리 한국군이 즉각적이고 강력한 반격에 나설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북한이 전쟁하려면 중국이나 러시아의 무기지원을 받아야 하는데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 탓에 무기고가 비었고 중국도 대만 침공 문제로 지원할 상황이 아니다”고 했다.

이용준 세종연구소 이사장은 윤석열정부가 외교·안보분야에서 이룩한 가장 큰 성과로 한·미동맹 복원과 한·미·일 안보협력 재건을 꼽으면서 “커다란 숙제가 두 가지 남았다”고 했다. 이 이사장은 “첫째 외교적 언어와 문서상의 합의를 행동으로 옮겨 실천하는 것이며, 둘째는 그러한 진전이 향후 국내정치 변화에 따라 수포로 돌아가지 않도록 외교적 연속성을 보장할 다양한 장치를 만드는 일”이라고 했다. 이재문 기자

이 이사장은 대신 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상황, 미래의 대만 전쟁 가능성에 주목한다. 20세기 냉전시대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등과 마찬가지로 이런 전쟁은 동일한 정체성을 갖고 있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그는 “이들 세 개의 전쟁은 미국·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등 자유민주 진영과 중국, 러시아, 이란 등 전체주의 진영 간 무력충돌”이라며 “이들 전쟁의 운명은 상호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고 했다. 러시아가 전쟁에서 성공을 거두고 미국이 지원하는 이스라엘도 이란이 지원하는 하마스와 헤즈볼라에게 고전한다면 이는 중국의 대만 침공 의지를 크게 고무하는 결과를 초래하리라는 설명이다. 이 이사장은 “중국이 대만 침공을 단행할 경우 미국 군사력의 분산을 위해 북한의 대남 군사도발을 부추길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인터뷰는 지난 1일 오후 경기 성남시 세종연구소에서 진행됐다.

―북한이 9·19 합의 파기를 선언한 후 남북관계가 심상치 않다.

“2018년 정치적 목적으로 졸속 합의된 9·19 합의는 지난 5년간 북한의 핵전력과 더불어 이 나라 안보를 위협하는 최대 위험요소로 비판받아 왔다. 북한이 이 합의를 3600번이나 위반하는 동안 우리 군은 대북 감시정찰과 훈련의 중단을 강요당한 채 홀로 이 합의를 준수했고 단지 북한의 선의에 의존해 나라를 지킬 수밖에 없었다. 9·19 합의 독소조항의 효력정지는 윤석열정부 출범 이래 한·미 연합훈련 재개와 더불어 가장 대표적인 국방태세 정상화 조치로 평가된다.”

― 앞으로 북한의 핵 도발 양상은 어떻게 전개될까.

“첫째, 최근 정찰위성 발사 성공으로 북한이 개발 중인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의 속도 진전이 예상된다. ICBM의 유도장치는 정찰위성 없이 완성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둘째, 이미 개발 완료된 잠수함발사미사일(SLBM)의 적재를 위한 잠수함의 성능개량이 지속될 전망이다. 셋째는 전술핵무기 개발이다. 거대 도시를 초토화하는 전략핵과 달리 히로시마 원폭의 수십 내지 수백분의 일에 달하는 극소형 전술핵무기는 일반 전투에서도 쓸 수 있는 무기라 북한이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러나 이는 미국, 러시아, 이스라엘만 가진 첨단기술이므로 북한이 성공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북한이 전술핵 개발에 성공하면 7차 핵실험에 나설 전망이다.”

― 북한의 핵·대량살상무기 위협에 대응하는 방안은.

“한국의 독자 핵무장이나 주한미군 전술핵 재배치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에서 확장억제 강화는 그나마 가능한 대칭적 핵 억지력 강화 조치다. 그러나 이는 한국 정부와 국민에게 심리적 위안이 될지언정 북한에 대한 억지 효과가 얼마나 될지는 불확실하다. 그보다는 미국 전략폭격기와 핵잠수함의 한반도 전개와 같은 가시적 조치가 더 도움되리라 생각한다. 특히 미국 핵잠수함의 정례적인 한국 기항은 가장 실효성 있는 조치로 판단된다. 북핵 위협이 고조될 경우 핵잠수함의 기항 빈도와 체류 기간을 확대하는 방식으로 대칭적 핵 위협을 강화할 수 있을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일본이 요코스카항을 미 해군 7함대의 모항으로 공여하고 있듯이 한국에 미 핵잠수함 기지를 조성하는 방안도 추진될 수 있을 것이다.”

―윤석열정부는 출범 이후 1년6개월간 가치외교·글로벌중추국가를 지향해 왔는데.

“한국이 세계 10위권 경제국이자 6위 군사 강국으로 부상한 만큼 이젠 이익 지향적인 후진국형 외교에서 탈피해 가치 지향적인 선진국형 외교로 전환해야 할 때가 되었다. 가치외교와 글로벌중추국가 추구라는 정책목표는 시의적절하게 설정되었다고 본다. 다만, 선진국형 외교를 구현하기 위해선 말이 아닌 행동으로 이를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 다른 선진국들처럼 외교적 갈등이나 경제적 손실을 감수하고 국가가 신봉하는 가치에 관한 소신을 지켜야 하며, 때로는 한국전쟁에 파병했던 16개국처럼 그 가치와 소신을 위해 희생을 감내할 준비도 되어 있어야 한다.”

―한·중관계가 불안한데 어떻게 풀어야 하나.

“한·중관계가 지향해야 할 목표는 명백하다. 우리는 중국에 대해 속방이 아닌 주권국가로서 자주적 선택을 하고 할 말을 떳떳이 할 수 있어야 하며, 그런 조건하에서도 정상적으로 유지될 수 있는 평등하고 호혜적인 한·중관계를 구축해 나가야 한다. 외교적 갈등을 피하는 것도 필요하고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는 것도 중요하나, 이를 위해 국가 주권을 양보하고 굴종하는 과오를 범해서는 안 된다. 한·중 정상회담이건 한·중·일 정상회담이건 한국이 너무 조바심내고 매달리는 자세를 보이는 건 전략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 시진핑 주석 방한 문제도 정중히 초청은 하되 집착하거나 매달리지는 말고, 시 주석이 스스로 방한할 때를 기다려야 한다.”

―한·일관계가 정상화됐다지만 과거사 문제 등 걸림돌도 적지 않다.

“감정적 문제와 국가 간 협력문제는 구분해야 한다. 일본은 한국의 외교, 안보, 경제에 있어 불가결한 파트너이므로, 과거사나 독도 문제와는 별개로 미래를 내다보고 협력을 강화해 나가야 한다. 제2차 세계대전 이전에는 유럽과 미주대륙을 제외한 지구상 대부분의 나라가 강대국의 식민통치를 받았다. 당시 아시아 전역에서 독립국은 일본과 태국뿐이었다. 그런데도 80년이 지난 지금까지 식민통치에 대한 사과와 배상을 요구하는 나라가 한국 이외에 더 있다는 얘기는 들은 적이 없다. 이제는 과거사의 강을 건너가야 할 때다.”

― 한국이 신냉전기 안보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할까.

“중국이 대만 침공을 감행할 경우 미국 군사력의 분산을 노리고 북한의 군사도발을 부추길 가능성이 있다. 두 군데서 전쟁이 나면 미국은 대만 방어에 집중하게 될 전망이며, 어쩌면 한국이 홀로 북한을 상대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런 위험성을 줄이려면 중국의 대만 침공이 현실화하지 않도록 우리도 손을 보태야 한다. 최선의 방법은 전체주의 진영이 유럽과 중동에서 벌이는 전쟁에서 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이 승리하도록 한국이 가능한 물적 지원을 제공하는 일이다. 한국이 러시아와 중국의 눈치를 보느라 그들을 돕기를 기피한다면, 한반도 전쟁 발발 시 무슨 명분으로 다른 나라들에게 지원과 참전을 요청할 것인가.”

―내년 미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승리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데 어떻게 대비해야 할까.

“트럼프 전 대통령이 백악관에 복귀할 경우 주한미군 감축 문제와 방위비 분담금 대폭 증액 요구가 다시 제기될 수 있다. 과거 트럼프 전 대통령이 주한미군 철수를 추진한 건 당시 한국 정부가 미국의 이해를 무시하고 친중·친북 일변도 정책을 고수한 데 대한 분노가 반영된 결과였다. 한·미동맹과 한·미·일 안보협력이 강화되고 대중국 공급망 통제 협력도 강화된 현 상황은 과거와 본질적으로 다르다. 방위비 분담 문제도 전향적 해결이 가능하다. 일본은 1996년부터 기지 건설비, 현지 노무비, 공공요금 등 주일미군 주둔비용을 적절성 심사를 거쳐 전액 부담하고 있다. 이젠 한국도 일본처럼 주둔비용을 전액 부담하되, 그 대가로 주한미군 화력의 상응하는 증강을 요구하는 방향으로 발상의 대전환을 고려해야 할 때다.”

―‘2030 부산엑스포’ 유치 실패 파장이 만만치 않은데.

“애초부터 어려운 게임이었다. 한국이 엑스포 유치 결정을 하고 교섭을 시작했을 때는 이미 사우디아라비아는 절대다수 국가로부터 지지 약속을 받아 대세가 기울어진 상태였다. 국제 외교무대에서 한국은 동질성을 가진 대규모 소속 그룹이 없는 고립적 존재다. 반면에 사우디는 아프리카·중동지역 70여 국가와 이슬람회의기구 57개국의 지원을 받는 나라다. 표 대결로는 승산이 없다. 우리가 과거 88올림픽과 2002년 월드컵 유치에 성공한 건 상대가 외교력이 비교적 약한 일본이었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엑스포 유치전 같은 큰 경쟁을 벌이려면 국내 정치적 고려 없이 가능성을 냉철히 따져 결정해야 하며 우리가 어느 도시를 후보로 내세우면 가장 많은 표를 얻을 수 있을지 잘 판단하는 것이 중요하다.”


주춘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