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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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와 다른 길 걸은 카스트로 여동생, 90세 일기로 별세

공산주의 쿠바 떠나 미국으로 망명
"오빠는 쿠바 국민과의 약속 어겨"
2016년 카스트로 장례식에도 불참

쿠바를 공산주의 국가로 만든 피델 카스트로(2016년 사망) 전 국가평의회 의장의 여동생 후아니타 카스트로가 4일(현지시간) 미국 플로리다주(州) 마이애미의 한 병원에서 90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후아니타는 쿠바가 공산화한 뒤 고국을 떠나 미국에 망명했다.

쿠바 공산주의 지도자 피델 카스트로의 여동생 후아니타 카스트로. 4일(현지시간) 미국에서 90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사진은 2009년 10월의 모습. EPA연합뉴스

이날 EPA 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고인은 카스트로와 사이가 나빴으며 평생 화해하지 않고 지냈다. 카스트로에 대해 고인은 ‘무고한 민간인들을 사살한 반역자이자 폭군’이란 인식을 갖고 있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실제로 그는 언론 인터뷰에서 “공산주의 혁명 당시 오빠(카스트로)가 ‘자유’와 ‘빵’이란 구호를 외쳤을 때 나를 이를 굳게 믿었고 쿠바에서 실현될 것으로 믿었다”며 “하지만 이후 나는 많은 쿠바인들처럼 배신을 당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토로했다.

 

2016년 카스트로가 사망했을 때에도 고인은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오빠의 죽음이 슬프긴 하지만 자유에 대한 믿음이 더 확고하기 때문”이라고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고인이 거주했던 마이애미는 미국에서 쿠바와 가장 가까운 지역이다. 그래서 공산화 이후 쿠바를 탈출해 미국으로 간 이민들이 많이 모여 살고 있다. 고인도 그런 이유에서 마이애미에 정착했다. 단 쿠바를 떠난 뒤로 한번도 고국 땅을 밟지 않았다.

피델 카스트로 전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 세계일보 자료사진

카스트로는 1926년 쿠바 비란에서 스페인 출신 이주민의 아들로 태어났다. 1959년 공산주의 혁명을 일으켜 친미 성향의 권위주의 정권을 무너뜨렸다. 1959년부터 1976년까지 쿠바 총리를 지낸 데 이어 1976년에는 상징적 국가원수에 해당하는 국가평의회 의장에 올라 2008년까지 집권했다. 카스트로가 건강상 문제로 물러난 2008년 남동생 라울 카스트로(92)가 국가평의회 의장을 넘겨받아 2021년까지 재임했다. 현재는 라울도 모든 권력을 내려놓고 정계에서 은퇴한 상태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