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메뉴 보기 검색

가성비 갑 코가서스 여행지 조지아 트빌리시 가보셨나요 [최현태 기자의 여행홀릭]

파란만장 역사 조지아 수도 트빌리시 1500년 세월 고스란히 간직/솔롤라키 언덕 오르면 와인잔과 칼 든 ‘조지아의 어머니’ 상 우뚝/쿠라강·평화의 다리 등 과거·현재 공존하는 풍경도 파노라마로/문화예술 살아 숨쉬는 옛 골목·8000년 역사 와인 즐기는 와인바 등 볼거리 즐길거리 많아/성 삼위일체대성당 야경엔 감탄 쏟아져

솔롤라키 언덕에서 본 트빌리시 전경.

왼손에는 와인 잔, 오른손에는 칼을 든 여인. 쿠라(므츠바리)강이 유유히 흘러가는 대지를 지그시 내려다보는 여인의 얼굴은 온화하지만 눈매는 단호하다. 친구는 와인으로 환대하지만 적이라면 칼로 응징하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드러내 듯. 높이 20m의 거대한 조각상은 숱한 외세의 침략에도 결코 굴하지 않는다는 조지아인의 정신을 상징하는 ‘조지아의 어머니(Mother of Georgia)’. 트빌리시 솔롤라키(Sololaki) 언덕에 서자 파란만장한 조지아의 역사가 쿠라강을 따라 가슴 뭉클하게 펼쳐진다.

세계일보 여행1면
세계일보 여행2면
조지아 위치.

 

◆숱한 외세 침략을 견뎌낸 ‘코카서스 3국’ 조지아

 

조지아의 어머니 조각은 조지아의 수도 트빌리시(Tbilisi) 어디에서 보일 정도로 조지아인의 정신을 상징하는 랜드마크다. 원래 이름은 ‘카르틀리의 어머니 기념비(Kartlis Deda monument)’. 소련연방시절 러시아식 이름인 ‘그루지야’로 불렸지만 독립한 뒤에는 이를 버리고 공식 국가 명칭을 조지아로 정했는데 본래 이름은 따로 있다. ‘사카르트벨로(Sakartvelo)’로 조지아 대다수를 차지하는 민족인 ‘카르트벨인의 땅’이란 뜻이다.

조지아의 어머니 정면.

왜 여인마저 칼을 들어야 했을까. 끊임없이 외세 침략에 시달린 조지아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쉽게 이해된다. 서쪽으로 흑해, 동쪽으로 카스피해 사이에 끼어있는 조지아는 동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교통과 무역의 요충지다. 이 때문에 오랜 세월 주변 세력의 각축장이 됐다. BC 6세기 그리스 식민지를 시작으로 기원전 66년 로마제국에 정복된 뒤에는 로마와 페르시아의 패권다툼으로 700년동안이나 전쟁에 시달렸다. 7세기엔 이슬람 세력에 정복됐고 이베리아왕국을 거쳐 조지아왕국이 세워진 11∼13세기초에 한때 황금기를 누렸다. 하지만 13세기 몽골, 16세기 이란 사파비왕조에 지배당했고 1901년엔 러시아가 점령한다. 1917년 러시아 제국이 러시아 혁명으로 무너지면서 트빌리시는 잠시 해방됐지만 얼마못가 1921년 다시 소련군에게 장악당하고 만다.

자유광장.
자유광장.

◆문화·예술이 살아 숨 쉬는 골목

 

조지아가 독립된 것은 1991년 4월 9일. 이제 30년을 겨우 넘겼기에 조지아는 아직 생소한 여행지다. 하지만 최근 가성비 뛰어난 여행지로 입소문을 타면서 수도인 트빌리시가 인기를 누리고 있다. 구도심 자유광장에서 여행을 시작한다. 한복판에 높이 솟아오른 탑 꼭대기 조각상이 푸른 하늘아래 황금빛으로 반짝이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조지아의 수호성인 성 게오르그(St. Georg)로 국가명 조지아의 기원이기도 하다. 용을 무찌르는 전설을 형상했는데 구소련에 벗어나려는 자유정신을 상징한다. 또 부패 정권에 저항하는 장미혁명 등 많은 투쟁이 바로 이 광장에서 펼쳐졌다.

헌책 판매 노점.
목조 베란다 가옥.
더 램프 라이터.

니코로즈 바라타쉬빌리(Nikoloz Baratashvili) 길을 따라 목조 베란다로 꾸민 옛 가옥들을 구경하며 쿠라강 방면으로 10분 정도로 걸어가면 가로등에 불을 붙이는 조각상 ‘더 램프 라이터(The lamp lighter)를 만난다. 조각가 이라크리 추라제(Irakli Tsuladze)의 2008년 작품으로 트빌리시의 과거로 시간 여행을 떠나게 한다.

메조브 자니토.
메조브 자니토.
니코 피로스마니.

오른쪽 이오아네 샤브텔리(Ioane Shavteli) 골목으로 들어서면 조지아 국민화가 니코 피로스마니(Niko Pirosmani 1862–1918)를 만난다. 조지아 화폐 1리라에 그의 얼굴이 5리라엔 그의 작품 ‘탈곡과 빨간셔츠를 입은 어부’가 등장한다. 그의 대표작품 메조브 자니토(Meezove Janitor)를 청동 조각상으로 만든 작품을 시작으로 조지아 고전 영화에 등장하는 다양한 캐릭터 조각상이 여행자를 반긴다. 원시주의를 뜻하는 프리미티즘(Primitism)의 대가인 피로스마니는 피카소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으며 따뜻하고 강렬한 색채가 돋보이는 작품들을 많이 남겼다.

1리라 니코 피로스마니 얼굴.
5리라 ‘탈곡과 빨간셔츠를 입은 어부’ 작품.
조지아국립미술관.

라트비야 가요 ‘마리냐가 준 소녀의 인생’을 구 소비에트연방 가수 알라 푸가초바가 불러 유명해진 ‘백만송이 장미’ 가사 내용이 바로 피로스마니의 러브 스토리를 담고 있다. 우리나라에선 심수봉이 불러 유명해졌다. 찢어지게 가난했던 그는 조지아를 찾은 프랑스 여배우 마르가리타에 한눈에 반하고 만다. 무모하게도 전 재산을 팔아 그녀가 묵던 숙소앞으로 장미꽃으로 단장하고 맹목적인 사랑을 구걸했지만 끝내 그녀의 사랑을 얻지 못했단다. 사랑이 시련이 약이 됐을까. 빼어난 작품을 쏟아낸 덕분에 지금은 조지아 국민이 가장 사랑하는 화가가 됐다. 조지아국립미술관에 그의 작품이 상설 전시되고 있다.

시계탑 골목 조각상.
시계탑.

길 끝에는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아담하고 예쁜 시계탑이 기다린다. 레조 가브리아제(Rezo Gabriadze·1936-2021)) 작품으로 그는 연극·영화감독, 극작가, 작가, 화가로 활동했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이 기운 독특한 디자인의 시계탑은 매시간 천사가 나와 작은 망치로 종을 울린다. 시계탑과 붙어있는 작은 가브리아제 극장에선 인형극 등 다양한 작품을 공연한다.

안치스카티 바실리카.
이오아네 샤브텔리 카페 골목.
이오아네 샤브텔리 카페 골목.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평화의 다리

 

6세기 프레스코화와 17세기 제단화로 장식된 안치스카티 바실리카(Anchiskhati Basilica) 앞에는 다양한 그림을 팔고 있다. 언덕길을 따라 계속 오르면 구도심에서 가장 예쁜 카페 골목이 시작된다. 서서히 어둠이 깔리면서 와인바와 레스토랑이 하나둘 불을 켜기 시작하자 마치 동화속의 한 장면을 걷는 것 같다. 한 여행자가 레스토랑 앞에 내놓은 피아노에 앉아 은은한 연주를 시작하자 골목은 낭만의 농도가 더욱 짙어진다.

평화의 다리 야경.
평화의 다리 야경.
평화의 다리 야경.

길은 트빌리시의 또다른 랜드마크 평화의 다리로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LED 조명 3만개와 센서 240개가 설치된 현대적 보행전용 다리로 쿠라강을 건너 트빌리시의 ‘과거와 현재’를 연결한다. 이탈리아 건축가 미카엘 데 루치(Michel De Lucchi)와 프랑스 조명 디자이너 필립 마르티노(Philip Martinaud)가 설계해 2010년 완공된 다리로 밤이면 화려한 조명으로 물드는 트빌리시의 핫플레이스다. 난간에는 미디어글라스가 설치돼 다양한 이미지와 영상을 연출한다. 많은 여행자들이 다리 위에 몰려 인생샷을 찍느라 분주하다.

평화의 다리.
열기구.
조지아의 어머니.
조지아의 어머니.

다리를 건너 깔때기 모양 콘서트홀을 지나 르하이크 공원(Rhike Park)으로 들어서면 열기구와 케이블카 탑승장이 보인다. 열기구는 지상에 매달려 수직으로만 뜨지만 트빌리시 풍경을 조망하기 좋다. 케이블카에 탑승하자 조지아의 어머니상이 서 있는 솔롤라키 언덕까지 5분만에 여행자를 실어 나른다. 조각상은 가까이서 보니 훨씬 웅장하다. 트빌리시 건국 15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1958년 목조로 설립했는데 알루미늄으로 장식했다가 1997년 지금의 새 동상으로 교체됐다. 조지아 조각가 엘구야 아마수켈리(Elguja Amashukeli) 작품.

샬바 다디아니 길 방면 언덕에서 본 트빌리시
트빌리시 전경.
솔롤라키 언덕에서 본 트빌리시 쿠라강, 평화의 다리, 깔때기 모양 콘서트홀.
솔롤라키 언덕에서 본 트빌리시 야경.
후니쿨라.

가파른 절벽에 세워져 앞 모습을 보기 쉽지않다. 자유의 광장쪽에서 샬바 다디아니(Shalva Dadiani) 길을 따라 오르면 정면을 제대로 볼 수 있다. 언덕 위에 서자 방금 지나온 평화의 다리와 쿠라강, 수직 절벽이 어우러지는 트빌리시 풍경이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쿠라강은 터키에서 트빌리시를 거쳐 카스피해로 빠져든다. 저 멀리 성삼위 일체 대성당도 아름다운 건축미를 뽐내니 벌써 가슴이 뛰기 시작한다. 왼쪽 높은 산에는 1930년대 세워진 므타츠민다 공원이 있고 대관람차에 올라 트빌리시를 감상할 수 있다. 트빌리시 푸니쿨라를 타면 1분30초 만에 오른다. 

성 삼위일체 대성당.
솔롤라키 언덕에서 본 메테키 교회 절벽과 쿠라강.
나리칼리 요새.
나리칼리 요새 야경.

언덕엔 4세기에 지은 나리칼라 요새(Narikala Fortress)도 등장한다. 수많은 침략과 공격을 견뎌낸 요새는 훼손과 복구를 반복하면 일부 허물어졌지만 17세기 이후로 원형이 잘 보존되고 있다. 이슬람과 유럽의 건축양식이 섞여 이색적인 매력을 지닌 요새에는 성 니콜리아 교회가 있고 성경과 조지아 역사가 담긴 프레스코화로 장식됐다.

식물원 입구 다리 사랑의 자물쇠.
온천지구.
메테키교회와 바흐탕 왕 기마상.

왼쪽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시원한 폭포수가 쏟아지는 트빌리시 식물원으로 이어진다. ‘사랑의 자물쇠’가 난간에 빼곡하게 달린 다리를 지나면 유황 냄새가 진동한다. 트빌리시 탄생의 기원이 된 아바노투바니 온천지구(Abanotubani Baths)로 시인 푸시킨이 사랑한 곳이다. 과거 이곳은 이베리아 왕의 사냥터였다.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5세기 바흐탕 골가사리(Vakhtang Gorgasali) 왕은 사냥중 화살을 맞고 떨어진 매를 찾는 사냥개를 뒤쫓다 유황 온천을 발견했다. 이에 왕은 이곳이 영험한 기운이 가득한 곳이라 여겨 이베리아 왕국의 수도를 25km 떨어진 므츠헤타(Mtskheta)에서 이곳으로 옮기면서 트빌리시 역사가 시작됐다. 트빌리시는 ‘따뜻한 물이 나오는 곳’이란 뜻. 온천지구 맞은 강건너 언덕에 세워진 메테키교회(Metekhi Cathedral)는 왕궁이 있던 곳으로 바흐탕 왕의 기마상이 늠름하게 서 있다.

성 삼위일체 대성당 입구.
성 삼위일체 대성당.

이제 트빌리시의 여행의 하이라이트 성 삼위일체 대성당(Holy Trinity Cathedral)를 만나러 간다. 아블라바리(Avlabari) 지역 엘리아 언덕(Elia Hill)에 세운 대성당은 구도심에서 걸어서 20∼30분 정도라 충분히 걸을만 하다. 츠민다 사메바(Tsminda Sameba) 성당으로도 불린다. 조지아 정교회의 총본산이자 트빌리시의 상징으로 예수 탄생 2000년, 조지아 정교회 독립 15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1994년 건축을 시작해 2004년 완공됐다. 정교회중 세계에서 세번째로 큰 규모다. 아치형 기둥 사이로 계단 위에 그림처럼 서 있는 대성당은 보는 순간 완벽한 균형미에 감탄이 쏟아진다. 돔 위에 얹은 7.5m 높이 황금 십자가의 위용도 대단하다. 낮보다 밤이 더 아름답다. 어둠이 내리고 대성당을 비추는 화려한 조명이 들어오자 가슴에도 평생 잊지 못할 아름다운 추억 하나 켜진다. 


트빌리시=글·사진 최현태 선임기자 htchoi@seg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