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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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수처 내홍 속 5번째 구속영장도 기각…'종이호랑이' 우려

현직 부장검사 "코미디 같은 일 마구 일어나…총체적 난국"

구속영장 발부 0건. 직접 기소 3건, 공소제기 요구 5건. 출범 3주년을 앞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남긴 초라한 기록이다.

권력형 비리 전담기구로서 검찰 견제, 성역 없는 수사, 부패 척결이라는 목표와 국민적 기대 속에 출범한 공수처가 출범 3년이 다 되도록 수사력 부족 논란을 떨치지 못하면서 '종이호랑이'로 전락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8일 법조계에 따르면 공수처가 특정범죄 가중처벌법상 뇌물 등 혐의로 청구한 경찰 간부 김모(53) 경무관 구속영장이 전날 법원에서 기각되면서 공수처는 2021년 1월 출범 이후 구속영장 청구 '5전 5패'라는 불명예를 안게 됐다.

공수처는 초대 공수처장인 김진욱 처장의 내년 1월 20일 임기 만료 전에 수사 성과를 올리려고 노력해왔는데, 지난달 8일 감사원 3급 간부의 구속영장이 기각된 데 이어 한달 만에 또 영장을 기각당했다.

특히 공수처는 이미 지난 8월 김 경무관에 대한 구속영장이 한차례 기각된 뒤 혐의를 보강해 이번에 영장을 재청구했지만,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뇌물죄 성립 여부가 불투명하다는 판단을 받아 체면을 더욱 구긴 모양새가 됐다.

공수처는 2021년 고발 사주 의혹 사건을 수사하면서 손준성 검사장에 대해서도 체포영장을 1회, 구속영장을 2회 청구하는 무리수를 뒀다가 연거푸 기각당한 적이 있다.

피의자가 수사기관을 무서워하지 않을 정도로 공수처 위상이 떨어진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전현희 전 국민권익위원장에 대한 표적 감사 의혹으로 수사받는 유병호 감사원 사무총장은 공수처의 소환 통보에 다섯 차례 이상 응하지 않아 조사 시기가 계속 미뤄졌다.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성 접대 의혹을 부실 수사해 직무를 유기한 혐의로 고발된 전·현직 검사 3명 중 현직 검사 2명도 공수처 소환에 불응하고 서면 질의에도 답하지 않아 결국 조사 없이 사건이 마무리됐다.

공수처가 수사권만 있고 기소권은 없는 사건에 대해 '검찰에 공소제기를 요구했다'는 표현을 쓰는 것을 두고도 검찰에선 '사건을 송치하는 것일 뿐인데 공수처가 없는 개념을 만들어 쓴다'는 반응이 나온다.

공수처 연간 세출예산은 내년 예산안 기준 202억원인데 그에 비해 존재감이 너무 미미하다는 평가도 있다.

공수처가 출범 이후 지금까지 근 3년간 직접 공소 제기한 사건은 3건, 검찰에 공소 제기를 요구한 건 5건에 그쳤다. 더욱이 직접 기소한 3건 가운데 기소 1호였던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뇌물수수 혐의 사건, 윤모 전 부산지검 검사의 공문서위조 사건은 모두 1심 무죄를 선고받았다.

공수처는 내년 예산안에 소속 검사 '스피치' 교육 비용으로 2천200만원(1인당 140만원)을 편성해 빈축을 사기도 했다.

설상가상으로 조직 내부 갈등도 극에 달한 모습이다.

김명석 공수처 인권수사정책관(부장검사)이 언론 기고에서 지휘부의 정치적 편향과 인사 전횡을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이에 여운국 차장검사가 김 부장검사를 명예훼손과 공무상 비밀 누설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김 부장검사는 지난달 30일자 법률신문 기고문에서 "검찰에서라면 일어날 수 없는 코미디 같은 일들이 마구 일어나는데 방향을 잡아줘야 할 처장, 차장 또한 경험이 없으니 잘하는 건 줄 안다"며 "계속 영장이 기각되는 건 이러한 연유이다. 총체적 난국이다"라고 주장했다.

차기 공수처장 추천위원회가 후보자 선정 작업을 진행 중인 가운데 내년 1월 20일까지 후보자 선정 및 청문회 절차가 마무리되지 않으면 가뜩이나 위태로운 공수처가 수장 없이 표류할 가능성도 있다.

<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