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철 골목길마다 모락모락 하얀 김을 피워올리며 재촉하던 발걸음을 붙잡던 붕어빵, 요즘은 좀처럼 찾기 힘들다. 하얀 종이봉지 가득 사서 가족, 친구들과 호호 불어가며 정겹게 나눠 먹던 붕어빵도 거리에서 사라져 편의점 기계로 들어간 군고구마 신세가 되는 것은 아닌가 아쉬웠다. 괜한 걱정이었다.
붕어빵을 찾아 헤매는 사람들을 위해 붕어빵 노점 위치를 찾아주는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이 등장하고, 노점 수는 줄었지만 대신 실내 매장이나 카페, 백화점 팝업스토어가 생기면서 붕세권(붕어빵+역세권)’이라는 신조어도 나왔다.
1000∼2000원이면 한 봉지 가득 담아주던 서민 간식이었지만, 이제는 팥소뿐 아니라 슈크림, 피자, 달걀, 고구마, 크림치즈 등 다양한 맛으로 변주해 인기 디저트로 진화 중이다. 2000원에 3개인 팥붕어빵을 제외하고 대부분 개당 2000∼3000원으로 ‘금’붕어빵이라 불려도 불티나게 팔리고, 붕어빵을 코스요리처럼 종류별로 맛보는 ‘붕마카세’(붕어빵+오마카세)까지 등장했다.
사라져 가던 붕어빵을 낚아 올린 것은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들이다. 붕어빵 맛집을 찾아내 줄 서서 산 인증 사진을 올려 널리 알리는 파워 소비자일 뿐 아니라 아예 직접 붕어빵집을 차려 맛있게 구워내고 있다.
소문난 붕어빵 맛집 사장 중 상당수가 2030 세대들이다. 이들은 붕어빵 메뉴를 다양화할 뿐 아니라 재밌고 신선한 콘셉트로 SNS 등을 활용한 마케팅도 활발하게 펼치고 있다.
전국 여기저기 옮겨 다니며 붕어빵 팝업스토어를 열고 있는 ‘붕어유랑단’이 대표적이다. MZ세대 세 여성이 ‘붕어 세이브 더 월드’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붕어빵 걸그룹을 표방하며 ‘붕진스’(붕어빵+뉴진스)라는 브랜딩을 통해 재미를 줄 뿐 아니라 아트페어에 참가해 붕어빵 굽는 퍼포먼스를 선보이기도 한다.
당초 임대료 낼 형편이 안 돼 남의 가게에 잠깐씩 기계만 들고 들어가 붕어빵을 판매하면서 시작해 ‘유랑단’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인스타그램에 팝업스토어 위치를 공지하면 순례하듯 지역을 가리지 않고 따라오는 단골 고객이 늘고 SNS에 인증 사진들이 퍼졌다. 최근엔 전국 백화점에 팝업스토어가 들어갔고, 지난 10일에는 마침내 팝업스토어를 시작했던 성수동에 1호점을 열었다. 이날은 붕어유랑단을 시작한 지 꼭 1년째 되는 날이었다.
최린, 최다혜, 김혜지 세 대표는 직장동료와 단골카페 사장으로 만났다. 코로나의 터널 속에서 세 사람 모두 일을 쉬던 차에 “재밌는 일을 찾아보자”며 머리를 맞댔다. 최린 대표는 “처음엔 붕어빵을 8주 정도만 해보자 했는데 시작하자마자 쭉 잘돼서 여기까지 왔다”면서 “‘붕어가 필요해? 그럼 우리가 가지’라는 콘셉트로 부산, 창원 등 전국 어디든 간다”고 소개했다.
처음부터 ‘주간 붕어빵’을 테마로 매주 메뉴를 바꿨다. 4∼5가지 메뉴를 매주 바꾸다 보니 총 30여 가지로 늘었다. 다른 붕어빵집처럼 팥과 슈크림이 가장 인기가 많고 새로운 메뉴 중에는 불닭만두붕어빵이 인기다.
최다혜 대표는 “붕어빵은 완벽한 K베이커리라고 생각해 다양한 레시피를 개발하게 됐다”면서 “특히 붕어빵을 추억의 간식으로 생각하는 중장년과 SNS 등의 매체를 통해 붕어빵을 접한 MZ 등 전 세대를 타깃층으로 아우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붕어빵을 겨울뿐 아니라 사계절 내내 즐기는 한국의 솔푸드, K디저트로 만들고 다음다음 주 김포공항 입점을 시작으로 해외 플리마켓(벼룩시장)에도 나가보는 게 목표”라며 웃었다.
성수동에는 붕어유랑단뿐 아니라 피자붕어빵으로 유명한 ‘성스러운 붕어빵’, 오랜 터줏대감인 ‘할머니 붕어빵’ 등이 모여 있어 진정한 붕세권을 형성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지역은 붕어빵 노점들이 사라지는 추세다. 밀가루 등 재료값이 오른 탓도 있지만, 구청에 불법 노점 신고를 당해 접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운좋게 찾은 붕어빵 노점에는 칼바람이 몰아치는 날에도 줄이 길게 늘어선다. 얼마 전 기자가 찾아간 서울 용산구 ‘남영역 잉어빵’ 집도 대기 줄이 길을 따라 코너를 돌아갈 정도로 길었다. 숙명여대 근처에서는 붕어빵을 팔다가 숙대생과 결혼한 남성의 러브스토리가 유명했지만, 그는 오래전 다른 업종으로 바꿨고 이제는 남영역 잉어빵이 명소가 됐다.
이날 1시간30분을 기다렸으니 최대한 많이 사야겠다고 별렀건만, 2000원에 세 개인 붕어빵은 1인당 6개로 판매 개수가 제한됐다. 서운할 만큼 팥이 적게 들어간 옛날 붕어빵과 달리 남영역 잉어빵에는 팥을 머리부터 꼬리 끝까지 가득 채운 것이 인기의 비결이다. 이곳은 전기로 여러 개를 동시에 굽는 기계 대신 가스불로 한 마리 한 마리 뒤집어 익히는 불판을 고집하고 있었다.
남영역 붕어빵 주인 A씨는 “전기보다 가스불로 구워야 맛있다”고 했다. “원래 수유리에서 했었는데 세 번이나 쫓겨나서 지난해 10월 여기 맞은편에서 노점을 하다가 가게 자리가 나서 올해 5월 이사왔다”면서 “원래 슈크림도 같이 팔았는데 초등학생들이 몰리다 보니 시끄럽다는 부녀회 민원이 많아 이제는 팥 붕어빵만 판다”고 말했다.
붕어빵 노점은 사라지고 있지만, 붕어빵은 여전히 뜨거운 사랑을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