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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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혁신안 거부한 김기현 대표, 아직도 상황 인식이 안 되나

시기·방법 없이 “기득권 내려놓겠다”
총선 체제 전환해 책임론 돌파 의도
쇄신 실기하면 미래 기약할 수 없어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가 어제 인요한 혁신위원회(혁신위)가 제안한 ‘주류 희생’ 안과 관련해 “저를 비롯한 우리 당 구성원 모두는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 모든 기득권을 내려놓고 사즉생 각오로 민생과 경제를 살리라는 국민 목소리에 답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혁신위 결과물이 공천관리위원회(공관위) 등 당 공식 기구에서 반영되고 추진되도록 하겠다”고도 했다. 하지만 언제 어떻게 기득권을 내려놓을 것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내년 총선에서 지도부·중진·친윤(친윤석열) 인사들의 불출마나 험지 출마를 요구한 혁신안을 거부한 것이다. 혁신위 출범 당시에는 전권을 주겠다고 하더니 쇄신의 칼날이 자신들을 향하자 외면한 건 무책임한 행태다.

김 대표는 총선 공천을 총괄하는 공관위를 조기에 띄워 빠르게 선거 체제로 전환함으로써 혁신위 조기 해산과 수도권 위기론 등으로 인한 지도부 책임론을 정면 돌파하려는 생각으로 보인다. 이런 기류는 박정하 수석대변인이 김 대표 사퇴와 관련해 “당이 변화·혁신해야 되는 건 맞지만 전술적으로 지금이 그 타이밍은 아니다”고 부정적 입장을 밝힌 데서도 드러난다. 총선을 4개월 앞둔 상황에서 지도부가 사퇴하면 당내 혼란이 올 수 있다는 것을 지적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달 중순 공관위 출범을 앞두고 총선 이슈를 잠식할 일을 만들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여당 지도부가 현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각종 여론조사는 물론 여당 자체 조사로도 총선 전망에는 빨간불이 켜졌다. 선거 승패를 가를 수도권이 특히 심각하다. 국민의힘 내부에서 김 대표 사퇴 요구가 잇따르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하태경·서병수 의원 등 비주류는 물론 지도부 일원인 김병민 최고위원조차 김 대표의 혁신안 수용을 압박하면서 “이번주가 골든 타임”이라고 했다. 맞는 말이다. 쇄신에도 타이밍이 있다. 때를 놓치면 여당의 미래도 기약하기 어렵다.

내년 총선에 윤석열정부 명운이 달렸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여소야대 구도를 바꾸지 못하면 노동·연금·교육의 3대 개혁 등 주요 국정과제 추진에 제동이 걸리는 것은 물론 식물 정부로 전락할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여당 지도부와 친윤·중진들은 희생은커녕 꽃길만 걸으려 한다. 지난 10월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패배 이후 “국민은 늘 무조건 옳다”던 윤석열 대통령도 방송통신위원장 인선을 보면 달라진 게 없는 듯하다. 윤 대통령과 여당 지도부가 현 상황을 엄중하게 인식하지 못하면 백약이 무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