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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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조희대號 개혁에 반발 나선 김명수號 판사들

조희대 대법원장이 추진하는 ‘법원장추천제 개선’을 두고 일부 판사들이 반발에 나섰다. 법원 일각에선 ‘김명수 사법부 유산 지우기’에 대한 저항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윤석열 대통령(왼쪽), 조희대 대법원장.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14일 법원 내부에 따르면 수원지법 성남지원의 A부장판사는 최근 법원 내부 게시판(코트넷)에 ‘지방법원장 추천제와 사건처리율의 상관관계’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A부장판사는 글에서 “재판 지연이 화두로 떠오르고 일각에서 지법원장 추천제가 재판 지연의 한 원인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면서 이를 반박했다. 

 

법원장 후보 추천제는 2019년 김명수 사법부에서 도입됐다. 각 법원 소속 판사가 투표를 통해 법원장 후보 1∼3명을 추천하면 대법원장이 이 중 한 명을 임명하는 방식이다. 대법원장 권한을 분산하고 사법행정의 민주성을 강화하겠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이 제도가 사실상 인기투표로 전락하면서 수석부장판사 등이 후배 판사의 눈치를 보느라 신속한 재판을 독려하지 못한다는 식의 비판이 제기됐다.

 

A부장판사는 이런 비판을 검증하겠다며 일부 법원을 대상으로 ‘추천제 기간과 그 직전 임명제 기간의 사건처리율’(동일 법원의 다른 기간과 비교), ‘추천제 기간의 임명제 법원과 사건처리율을 비교’(동일 기간의 다른 법원과 비교)를 분석 방법으로 택했다.

A부장판사는 그러면서 △추천제와 임명제의 처리율 차이가 미세한 점 △법원별, 연도별 사회·경제적 여건이 다른 점 △사건 수에 따라 법원별 가동 법관이 매년 조정된 점 등을 고려하면 어느 한쪽이 우위 현상을 보인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의정부지법 남양주지원의 B판사도 지난 13일 ‘재판지연과 법원장 추천제도 개선 관련 언론보도에 대하여’란 제목의 글을 올렸다. 그는 “이러한 논의를 왜 법원 내부에서 먼저 접하지 않고 기사들을 통해 접하는지 의문”이라며 “최소한 사법행정에 관한 논의는 법원 내부에서 먼저 시작되길 바란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B판사는 “법원장 추천제의 대표적 폐단으로 ‘법원장이 소속 판사들의 눈치를 보느라 재판 지연을 제대로 단속하지 못한다’는 점이 꼽히는데, 법원장이 재판 지연을 제대로 단속한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인지, 법원장이 사법행정권을 부당하게 남용하지 않는 전제에서 어떤 방식으로 단속하면 재판 지연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인지 솔직히 의문이 든다”고 썼다.

 

이에 대해 일선의 한 중견 판사는 “글 자체만 보면 법원장추천제 수정 내지 폐지 논의에 대한 반론이지만 크게 보면 김명수 사법부 체제의 유산을 지우지 말라는 얘기로 읽힌다”면서 “이제부터가 시작인 것 같다”고 언급했다.

김명수 전 대법원장. 대법원 제공

A판사는 2017년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당시 코트넷에 국회 차원의 국정조사를 요구하는 글을 올렸던 인물이다. B판사도 당시 관련 판사들에 대한 탄핵을 공개 촉구하는 목소리를 낸 바 있다. 

 

2018년 전국법관대표회의 첫 회의에서 당시 자체 조사가 진행 중이던 ‘사법부 블랙리스트’와 관련해 “법관독립이 심각하게 훼손된 점에 대해 깊이 우려하고, 책임을 통감한다”는 문구를 적시한 의안을 현장에서 기습 발의한 공동발의자 5명 중 2명이기도 하다. 당시 다른 법관들이 문제를 제기하면서 최종 가결된 선언문에는 해당 문구가 빠졌다.


이종민·안경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