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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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에서 다시 가해자로… 대물림 되는 가정 아동학대

스위트 홈/이시이 고타/양지연 옮김/후마니타스/1만9000원

 

2014년 일본 도쿄도 아다치구 한 빌라에서 일어난 아이 사망 사건이 충격을 던진다. 수사 결과 6명의 자녀 중 세 살인 둘째 아들은 1년 넘게 소재가 불분명했고, 학대를 의심한 아동상담사가 가정을 방문했지만 부모는 마네킹을 활용해 살아 있는 것처럼 꾸몄다. 부모는 죽은 아들이 살아 있는 것처럼 꾸며 아동 수당과 생활보호 수당을 계속 받아왔으며, 둘째 딸을 반려견용 목줄로 묶고 때리는 등 학대하기도 했다. 이후 장기간의 수사를 통해 죽은 아이는 토끼 우리에 갇혀 지내다가 결국 사망에 이른 것으로 밝혀졌다.

놀랍게도 학대가 세상에 알려지기 전까지 주변 사람에게 이 가정은 화목해 보였다. 그래도 이 사건은 세상에 일찍 알려진 편일지도 모른다. 토끼 우리 학대 사건이 처음 언론에 보도된 2014년, 가나가와현 아쓰기시에선 유아 아사 백골화 사건이 발생한다. 세 살배기 리쿠는 입김이 하얗게 서릴 정도로 추운 작은 연립주택 방에서 기저귀와 티셔츠 한장을 걸친 채 웅크려 앉은 자세로 발견됐다. 아이가 죽은 지 7년 반이 흐른 뒤였다. 리쿠는 죽기 전 2년3개월간 집에만 갇혀 지냈는데, 무려 1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아무도 아이에 대한 학대를 알지 못했다.

이시이 고타/양지연 옮김/후마니타스/1만9000원

일본 후생노동성은 2013년 학대로 사망한 아동이 69명이라고 밝혔고, 일본소아과학회는 실제 살해된 아동은 5배가 넘는 350여 명일 것으로 추정했다.

잔혹한 아동 학대와 살인은 바다 건너 남의 나라 일이 아니다. 보건복지부의 ‘2022년 아동학대 연차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에서 지난해 학대로 사망한 아동은 50명이다. 2017년 세 살 아들의 목에 목줄을 채우고 방치해 숨지게 한 20대 부부가 중형을 선고받았고, 지난해 친모가 네 살 난 딸을 학대해 숨지게 하고 함께 동거했던 여성은 친모에게 성매매를 강요한 사건이 세상에 알려졌다.

사람들은 이들을 ‘악마’라고 비난한다. 하지만 정작 재판이 시작돼 사건의 내막이 밝혀질 때 즈음이면 아이의 죽음은 세상의 관심에서 멀어진다.

저자는 일본에서 큰 주목을 받았지만 잊혀 가고 있는 세 건의 아동 살인 사건을 탐문 조사와 범인과 주변인 인터뷰를 통해 재조명한다. 이는 범인들의 항변을 듣기 위해서가 아니라 수사에서 드러나지 않았던 사건의 원인을 살펴보는 작업이다.

모든 아동학대 사건이 같을 순 없지만 적어도 이 세 건의 살인에서 아이를 학대한 부모는 그들의 부모로부터 학대받았다. 피해자가 다시 가해자가 되는 악순환이었다. 여기에 사회의 무관심이 더해지며 아이들을 살릴 기회를 놓쳐버렸다.

우리가 조금만 더 관심이 있었더라면 어쩌면 이 아이들을 살릴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참혹한 사건의 기록이 끝나는 책의 말미, 저자는 힘겹게 책장을 넘긴 독자를 위해 작은 위안과 희망의 씨앗을 덧붙여 뒀다.


엄형준 선임기자 ting@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