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8년 영국의 한 극장. 프랑스 작사가 알랭 부블리(82)는 뮤지컬 ‘올리버’를 보다 갑자기 빅토르 위고(1802∼1885)의 소설 ‘레미제라블’을 뮤지컬로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번개에 맞은 것 같았다. ‘캣츠’, ‘오페라의 유령’, ‘미스사이공’과 함께 세계 4대 뮤지컬로 꼽히는 ‘레미제라블’이 태동한 순간이다.
지난 15일 서울 ‘한국의집’에서 기자들과 만난 부블리는 당시를 떠올리며 “‘레미제라블’의 성공이 아직 동화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부블리는 곧바로 클로드 미셸 숀버그와 레미제라블의 뮤지컬화 작업에 돌입했다. 음반부터 발매하고 1980년 파리에서 첫 ‘레미제라블’을 올렸다. “첫 공연 때 굉장히 많은 사람이 왔지만 3개월만 공연했어요. 프랑스에서는 3개월 넘게 공연하는 경우가 흔치 않았거든요. 그게 끝일 줄 알았죠.”
그러다 3년 후 영국의 전설적인 뮤지컬 제작자 카메론 매킨토시(77)가 전화를 했다. ‘캣츠’ 등 4대 뮤지컬 제작자인 매킨토시는 “음반을 듣고서 ‘인생의 공연이 될 것 같다’고 생각했다”며 ‘레미제라블’ 제작을 제안했다. 부블리는 “‘올리버’를 제작한 사람도 매킨토시라는 걸 나중에야 알았다”며 웃었다.
영국에서 뭉친 세 사람은 프랑스 판을 보완해 ‘레미제라블’을 새로 내놨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1985년 웨스트엔드에서 초연한 후 지금까지 53개국 22개 언어로 공연됐고 전 세계 1억3000만명가량이 관람했다. 부블리는 “런던에서 공연이 열린다는 것 자체가 놀라웠다. 함께 작업한 작곡가(숀버그)조차도 성공하겠다 생각하지 못했던 작품이었다”고 회상했다.
이 작품은 주인공 장발장의 인생 역정을 중심으로 프랑스 민중의 고단한 삶과 자유를 향한 열망, 혁명 등을 다룬다. 부블리는 “(원작자인) 위고의 천재성은 일상에서 만날 수 있는 인물들을 소설 속에 담았다는 점에서 드러난다”며 “‘자베르’와 ‘판틴’ 등 위고가 묘사한 인간군상의 모습은 지금도 유효하다. 뮤지컬의 역할은 소설 속 (인물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게 도와준 것”이라고 말했다.
가장 애정이 가는 캐릭터를 묻자 “제가 파리 공연의 코제트 중 한 명(마리 자모라)과 결혼했다”(웃음)며 ‘코제트’를 꼽았다. 특히 애착가는 곡은 판틴의 넘버(노래) ‘아이 드림드 어 드림(I Dreamed a Dream)’이라고. “원작 소설 중 홀로 딸 코제트를 기르는 여인 판틴의 이야기를 보자마자 노래로 쓰겠다는 영감을 얻어 가장 먼저 쓴 곡이기 때문에 마음 한켠에 기념품처럼 자리잡았어요.” 그는 혁명에 나선 학생들이 바리케이드에서 부르는 노래 ‘드링크 위드 미(Drink With Me)’도 눈물을 글썽이며 쓴 곡이라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가족과 함께 내한한 부블리는 “오디션 때 들은 한국 배우들의 목소리가 너무 아름답고 훌륭해서 와서 꼭 보고 싶었다”며 “한국어 자체에 있는 굉장히 아름다운 선율이 있다. 한국어를 듣고 있으면 노래하듯 말하는 느낌을 주는데, 레미제라블 공연에 도움이 된 것 같다”고 했다.
부블리는 레미제라블 외에 50주년을 맞는 ‘라 레볼루션 프랑세즈(프랑스 혁명)’, ‘미스사이공’, ‘해적 여왕’ 등 숀버그와 협업한 모든 뮤지컬의 오리지널 대본 작업을 맡았다. 토니상과 그래미상, 몰리에르 상 등 권위 있는 상을 여러 차례 받았다.
“한국 배우들이 너무 훌륭하게 잘 하고 있어요. 다음에는 ‘미스사이공’으로 한국을 다시 찾고 싶네요.” 2012년 한국어 초연 후 10년 만인 ‘레미제라블’ 공연은 내년 3월 10일까지 서울 블루스퀘어 신한카드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