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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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고문치사’ 李 측근 공천자격 번복, 검증 못한 건가 안 한 건가

더불어민주당이 지난 15일 과거 고문치사 사건에 연루돼 실형을 선고받았던 정의찬 당대표 특보에 대한 내년 총선 후보자 적격 판정을 철회하고 부적격 결정을 내렸다. 정 특보는 전날 발표된 민주당 공직선거후보자검증위원회(검증위)의 적격 판정자 95인 명단에 포함됐다. 하지만 그가 1997년 전남대에서 발생한 ‘이종권 고문치사’ 사건 가담자였다는 점이 논란이 되자 하루 만에 부적격으로 결과를 뒤집은 것이다.

해당 사건은 1997년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 산하 광주전남지역총학생회연합(남총련) 간부들이 전남대에서 가짜 대학생인 이종권씨를 ‘경찰 프락치’로 의심하고 집단폭행과 고문을 가해 숨지게 한 사건이다. 당시 남총련 의장이자 조선대 총학생회장이던 정 특보는 폭행을 지시하고 은폐한 혐의로 항소심에서 징역 5년에 벌금 2000만원을 선고받았고, 2002년 김대중정부에서 사면·복권됐다. 이후 지난 대선에서 이재명 캠프 선거대책위 조직본부팀장을 맡는 등 이 대표 측근으로 활동했다.

이재명 대표는 정 특보 적격 판정에 대해 “규정을 잘못 본 업무상 실수가 아닌가 싶다”고 했다. 김병기 검증위원장도 “검증 자료에 치사 부분이 있었는데 놓쳤다”고 해명했다. 곧이듣기 어렵다. 정 특보는 지난 8월 이 대표로부터 특보 임명장을 받을 때도 고문치사 가담자 논란이 일었다. 그는 이 대표가 경기지사이던 2021년 4월 수원월드컵경기장관리재단 사무총장으로 임명됐다가 고문치사 사실이 알려지면서 4개월 만에 물러나기도 했다. 검증위의 실수가 아니라 이 대표 측근이어서 탈락시키지 못하고 눈감아 줬다고 볼 수밖에 없다. 민주당이 ‘이재명 사당’으로 전락한 또 하나의 방증이다.

검증위가 그제 기준 적격 판정을 내린 338명 가운데 부적격으로 번복된 건 정 특보 한 명뿐이다. 이들 중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총선 예비후보자로 등록한 211명을 분석한 결과 전과 기록이 있는 인물은 33%인 71명으로 나타났다. 전과기록이 있다고 모두 자격미달이라고 할 수는 없다.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법을 위반한 후보자들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음주운전, 공직선거법 위반 등 상식적으로 용납할 수 없는 범죄를 저지른 후보자들이 다수 포함된 건 문제다. 음주운전 전과자는 19명이나 된다. 검증에 구멍이 뚫렸다고 볼 수밖에 없다. 이런 부적격 후보자들을 내고도 유권자에게 표를 달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