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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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륵’ 전락한 물류창고…경기 시·군 곳곳에서 파열음, ‘난립 방지 조례’ 의결 [밀착취재]

‘물류창고 난립’에 주민 갈등 고조…도의회, 안전 조례 의결
‘물류 천국’의 그늘…민선 8기 곳곳에서 인허가 백지화 시도
대형 아파트 단지 인근에 축구장 5개 크기 물류창고 건립,
“대형 물류 차량에 아이들 위험” 주민들 연일 반대 시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폭발적으로 성장한 온라인 배송 시장과 함께 물류창고를 둘러싼 지역민들의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10년 전만 해도 매년 100곳 안팎씩 늘던 물류창고는 2020년 이후 매년 500∼600곳씩 급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물류창고가 집중된 수도권을 중심으로 인근 주민들의 반대 시위가 잇따르고 있지만 마땅한 해결책을 찾지 못한 상태다.

경기 여주시 산북면에 내걸린 물류창고 반대 현수막. 오상도 기자

19일 경기도에 따르면 전날 도의회 건설교통위원회에선 도내에 물류시설이 집중되는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조례안이 통과됐다. 도의회 김동영(더불어민주당·남양주4) 의원이 대표 발의한 ‘물류창고 난립으로부터 안전한 정주환경 조성에 관한 조례안’에는 안전과 환경 보호를 명목으로 물류창고 난립을 방지하는 내용이 담겼다. 일선 시·군의 현실을 반영한 해당 조례는 이변이 없다면 연말 본회의에 상정돼 의결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조례는 도내 31개 시·군마다 물류창고 설립 기준이 없거나 달라 혼동이 빚어지는 현실을 투영했다. 국가물류통합정보센터 자료에 따르면 이달 기준 전국 물류창고 4904곳 중 경기도에 36.8%인 1803곳이 등록돼 있다. 도의회 자체 조사에선 2021~2023년 8월 도내에 들어선 연면적 4500㎡ 이상 물류센터 187개 중 44곳(3곳은 중복)이 학교나 주거지로부터 반경 200m 거리에 자리 잡고 있다.

 

조례안은 도지사가 안전한 정주환경 조성을 위해 시·군과 협의해 물류창고 이격거리·높이·배치 등 표준 허가기준을 포함한 물류창고 난립 방지 계획을 마련하도록 했다. 또 시·군에 주거지 및 학교와의 이격거리 등 물류창고 허가기준 마련을 권고하는 내용을 담았다. 

경기도의회 본회의장 전경. 경기도의회 제공

도의회 관계자는 “중소 규모 물류창고가 주거지와 학교 근처에 난립해 국토환경의 훼손과 사회적 갈등을 야기하고 있다”며 “도 차원에서 물류창고 표준 허가기준을 마련하자는 의도”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물류창고가 몰린 용인, 화성, 오산, 이천, 여주의 5개 시·군은 도시계획 조례로 주거지와의 이격거리 등 창고시설 허가기준을 제정했다. 광주시도 조례 개정 작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미 도내 시장·군수들 사이에선 물류창고가 ‘계륵’으로 전락한 지 오래다. 기업 유치로 지방세 수입을 가져오지만, 잇따른 안전사고와 지역민의 민원이 들끓으면서 행정의 발목을 잡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경기 여주시 산북면에 내걸린 물류창고 반대 현수막. 오상도 기자

실제로 지난해 7월 출범한 민선 8기 시장·군수들 가운데는 전임 단체장이 추진한 관련 사업의 인허가를 뒤집으려는 시도가 속출했다.

 

김동근 의정부시장은 임기 첫 업무로 전임 안병용 시장이 추진한 연면적 10만㎡ 규모의 물류창고 건축 허가에 대해 백지화를 지시했다. 의정부시가 2021년 11월 고산동 2만9700여㎡ 부지에 지하 2층, 지상 5층 규모의 물류창고 허가를 내주자 인근 주민들이 “초등학교와 가까워 안전과 교통, 환경 피해 등이 우려된다”며 반발한 탓이다. 이곳에선 지금도 주민들이 축구장 5개를 모아놓은 크기의 물류센터 건립 계획에 대한 백지화를 요구하며 촛불 집회와 1인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주광덕 남양주시장과 강수현 양주시장 역시 취임과 동시에 전임 시장이 짓기로 한 대형 물류창고 사업에 대한 재검토에 들어갔으나 마땅한 법적 근거가 없어 공사를 막지 못했다. 

 

2021년에만 물류창고 4곳이 들어선 경기 광주시 초월초등학교 인근에선 대형 화물차량이 학교 앞 2차선 도로를 지날 때마다 매연과 먼지가 번져 주민들의 민원이 쏟아지고 있다.

 

반면 기업 입장에선 절차상 문제가 없는데도 민원에 종종 공사가 중단되고 경영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인허가 단계부터 합리적 판단과 갈등 조정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용인·화성·오산·여주=오상도 기자 sdoh@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