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어제 우여곡절 끝에 내년도 예산안에 합의했다. 정부안 656조9000억원에서 4조2000억원을 감액하는 대신, 국회가 요구한 4조2000억원의 증액을 정부가 수용해 최종 정부안대로 유지됐다. 윤재옥 국민의힘 당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와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양당 간 양보와 타협을 통해 예산안 합의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합의된 예산안의 본회의 처리는 오늘 이뤄진다.
정부의 대규모 감액으로 논란의 중심에 섰던 연구개발(R&D) 예산은 현장 연구자의 고용불안을 해소하고 차세대 원천기술 연구 보강, 최신·고성능 연구 장비 지원 등을 위해 6000억원을 늘렸다. 방만사업으로 평가받는 새만금 관련 예산도 입주기업의 경영활동·민간투자 유치 명목으로 3000억원을 증액했다. ‘이재명표 예산’으로 불린 지역사랑상품권 발행 지원 예산 3000억원도 반영한다. 구체적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지만 민주당이 요구한 검찰·경찰 등의 특수활동비와 예비비·공적개발원조(ODA) 예산 등이 감액 사업에 포함됐을 것으로 보인다. 압도적인 의석수를 앞세워 ‘단독 처리’까지 겁박하며 예산안 처리를 지연시킨 민주당에 여당은 속수무책이었다.
초유의 야당 단독처리나 준예산 사태까지 가지 않은 건 다행이다. 국회선진화법 시행 이후 ‘최장 지각 처리’라는 불명예를 우려한 고육지책으로 보인다. 그렇더라도 법정 시한(12월2일)을 19일이나 넘긴 늑장 처리는 질타받아 마땅하다. 헌법이 부여한 정부 예산편성권을 부정하는 건 의회민주주의를 가장한 다수당의 폭거다. 예산안 심의 과정도 허술하기 짝이 없다. 올해 세수 펑크가 역대 최대인 60조원대로 추산되고 내년에는 더 암울하다. 한정된 예산을 적재적소에 안배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도 모자랄 판에 특검·탄핵, 국정조사를 놓고 대치하면서 시간을 허비했다. 2014년 정부편성 예산안 자동부의제를 도입했지만 법정시한을 지킨 건 2015년도와 2021년도 두 차례뿐이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예산 심사는 정쟁의 대상이 아니다. 선심성 예산은 걸러내야 하지만 복지, 안보, 교육 등 민생과 국가안보에 필요한 예산은 대통령제하에서는 정부안이 우선이다. 예산안 지각 처리는 국회의 본분을 외면하는 직무유기다. 언제까지 ‘표퓰리즘’성 예산 편성, 지각심사, 늑장 처리라는 국회의 추태를 되풀이할 것인가. 이제라도 국회는 당리당략을 떠나 국민의 삶을 살피는 국회 본연의 임무에 충실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