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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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으로 빚은 은빛 하모니… 한겨울 추위도 사르르 [밀착취재]

6080이 이끄는 ‘송파구립실버악단’

서울 송파구 송파런 뮤직스튜디오 연습실에서 경쾌한 캐럴이 흘러나온다. 지하도를 지나던 시민들이 음악 소리에 잠시 가던 길을 멈추고 유리창 넘어 연습실 안을 들여다본다. 송파구립실버악단 단원들이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올해 마지막 공연 연습에 한창이다.

악단도 실버… 관객도 실버 백발의 어르신 관객들이 송파구립실버악단의 크리스마스 캐럴 공연을 즐기고 있다. 공연마다 악단 구성원들과 비슷한 나이 대의 실버 관객들이 객석 대부분을 차지한다.

1994년 창단된 송파구립실버악단에서는 60대부터 80대까지 머리에 흰 눈이 희끗희끗 내린 단원이 전자오르간, 기타, 트럼펫, 트롬본, 색소폰, 드럼 연주를 맡고 있다. 단원 13명 중 사회자를 제외하고 연주를 직접 하는 12명 전원이 방송국과 전문 악단에서 활동하다 은퇴한 프로 출신이다.

색소폰 주자 한학 단원이 악기를 조율하고 있다. 악기도 나이가 들면 사람처럼 여기저기 손 가는 곳이 많아진다고 농담을 건넨다.
올해 마지막 공연을 앞두고 연습 중인 송파구립실버악단. 매주 2회 두 시간씩 다함께 모여 연습한다.

오늘 연습곡은 남녀노소 누구나 좋아하고 귀에 익숙한 크리스마스 캐럴이다. 한 곡 합주가 끝날 때마다 단원들이 의견을 낸다. “단장님. 이번 곡은 한 키 올려서 가는 게 좋을 것 같네요.” “그래요, 음이 너무 낮아요.” “예, 그럼 한 키 올려서 한 번 더 가봅시다.”

캐럴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의 악보를 보며 연습 중인 류제택 단원.
한 단원이 본인의 파트에 크게 표시해 둔 악보를 챙기고 있다.
휴식 중인 김만국 단원 옆에 오랜 세월 그와 함께한 트롬본이 놓여 있다.

곽승호 단장은 밴드라는 특성상 단원 사이에 소통이 중요하다고 했다. 연습은 일주일에 두 번 진행된다. “각자의 악기에 노련한 전문 연주자들이지만 연습을 게을리하면 그 결과는 바로 나타나기 때문에 구성원 모두 연습에 적극 참여하고 있습니다.” 연습을 총괄하는 곽 단장 설명이다.

공연 당일 단원들이 트럭에 음향장비와 악기를 싣고 있다.

공연 당일 다시 찾은 실버악단 사무실은 앰프와 대형 스피커 등 공연에 사용되는 각종 음향 장비를 트럭에 싣느라 분주한 모습이다. 올해 초 입단한 ‘신입’이 누구보다 부지런히 장비를 들어 나른다. 방송국 악단에서 활동하다 정년퇴직한 60대 초반의 신입 단원들은 악단 내에서는 젊은이로 통한다. “다들 연배가 높으신 분들이라 막내들이 좀 더 바쁘게 움직이는 것뿐입니다. 하하.”

악단 최고령인 한금석 단원(오른쪽)과 막내 정성호 단원이 함께 연습하고 있다.

오늘 공연장은 송파동 석촌호수 아뜰리에. 실내 공연이다. 맨 먼저 도착한 곽 단장이 시설 관계자와 함께 음향장비를 조율한다. “실내 공연은 야외 공연보다 스피커 등 음향장비 설치에 좀 더 신경 써야 합니다. 그래서 공연장에 좀 일찍 오는 편이죠.” 악기가 도착하자 단원들은 신속하게 공연 준비에 합류했다. 오후 3시 정각에 공연이 시작됐다.

홍일점 이경희 단원이 공연 사회를 보고 있다.
공연장인 석촌호수 아뜰리에가 관객들로 가득 차 있다.

“안녕하세요. 올해도 열심히 달려오신 관객 여러분께 송파구립실버악단이 성탄 선물로 신나는 캐럴을 모아 준비했습니다. 첫 곡은 팰리스나비다입니다.” 사회자이자 홍일점 이경희 단원이 오프닝 멘트와 함께 첫 곡을 소개하자 신나는 캐럴이 공연장에 울려 퍼졌다. 모두 열다섯 곡의 크리스마스 캐럴이 연주됐다. 한 곡 한 곡 관객은 열띤 박수를 보내며 즐거워했고 단원은 최선을 다한 연주로 화답했다.

한 관객이 스마트폰으로 공연 모습을 녹화하고 있다.
송파구립실버악단 단원들이 공연을 마친 후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산타할아버지 우리 마을에’를 끝으로 올해 마지막 공연이 마무리되자 관객은 행복한 표정으로 큰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환한 웃음으로 무대 인사를 하는 단원들의 ‘음악 열정’이 겨울을 녹인다.


글·사진=남제현 선임기자 jehyu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