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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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군 철수 완료… 니제르 군부 "스스로 안보 지킬 것"

7월 군부 쿠데타 이후 "프랑스 떠나라"
'아프리카 맹주'는 옛말… 영향력 급감
프랑스 공백, 러시아와 중국이 채울까

프랑스가 군부 쿠데타 이후 프랑스와의 군사협력 중단을 선언한 아프리카 니제르에서 군대를 완전히 철수시켰다. 과거 이 지역에 광대한 식민지를 거느렸던 영향으로 최근까지도 ‘아프리카의 맹주’로 통한 프랑스의 몰락을 상징하는 장면으로 평가된다.

 

자신감에 찬 니제르 군사정부는 “우리는 더 이상 우리 안보를 외국에 의존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22일(현지시간) 니제르에 남아 있던 마지막 프랑스군 장병들이 철수를 위해 군용기에 오르고 있다. 프랑스군 참모본부는 이날 “우리 군대와 군용기가 모두 니제르를 떠났다”고 공식 발표했다. AFP연합뉴스 

22일(현지시간) AP 통신에 따르면 프랑스군은 이날 “지난 7월 쿠데타 이후 프랑스와 단교한 니제르 군사정권이 프랑스군의 철군을 요구하며 정한 12월22일 시한까지 프랑스의 모든 군용기와 부대가 니제르를 떠났다”고 밝혔다. 앞서 프랑스는 니제르 주재 대사관을 비롯한 자국 외교공관도 모두 무기한 폐쇄한다고 발표했다.

 

니제르에서는 올해 7월26일 군부 쿠데타가 일어나 합법정부를 이끌어 온 모하메드 바줌 대통령이 축출됐다. 이후 그 직전까지 바줌 대통령의 경호실장 노릇을 했던 압두라흐마네 티아니 장군이 군사정권을 수립했다. 국제사회는 즉각 “쿠데타는 원천 무효”라며 바줌 대통령의 복귀를 촉구했다. 특히 과거 니제르를 식민지로 지배했던 프랑스는 “바줌 대통령이 권좌로 돌아오지 않으면 니제르에 대한 경제원조를 모두 중단하겠다”고 압박했다.

 

하지만 티아니 군사정권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되레 니제르에 상주하는 프랑스 외교관들에게 추방령을 내림과 동시에 니제르에 주둔한 프랑스군의 완전 철수를 요구했다. 프랑스가 이를 거부하자 군사정권은 지난 9월 비행금지령 선포 위협을 가했다. 니제르 영공을 비행하는 프랑스 군용기는 물론 민항기까지 다 공격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됐다. 결국 프랑스는 ‘백기’를 들고 자국군 철수에 동의했다. 당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직접 방송에 출연해 “니제르와의 군사협력은 끝났다”며 “앞으로 몇 달 안에 프랑스군이 니제르를 떠날 것”이라고 발표했다.

 

니제르에서 군부 쿠데타가 일어난 직후인 올해 8월 초 군사정권 지지자들이 니제르 주재 프랑스 대사관 앞에서 대규모 반(反)프랑스 시위를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프랑스는 그간 니제르에 1500명가량의 병력을 상주시키며 사헬에 근거지를 둔 테러리스트들의 소탕 작전을 펼쳤다. 사헬은 아프리카 사하라 사막의 주변 지대를 뜻한다. 프랑스군의 철수는 이 지역에 힘의 공백을 초래하며 테러조직들이 더욱 발호할 것이란 우려를 낳고 있다. 일각에선 프랑스 등 서방을 대신해 러시아와 중국이 아프리카 대륙을 장악하는 계기가 될 것이란 관측도 내놓는다.

 

니제르 군사정부는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군사정부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게시물을 통해 “새로운 시대”의 개막을 알렸다. “니제르는 우뚝 서 있다”며 “우리 조국의 안보를 더는 외국에 의존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우리 스스로의 군사적·전략적 능력을 강화함으로써 우리 앞에 놓인 도전 과제들을 해결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앞서 프랑스군에 기지를 내주고 프랑스와 긴밀한 협력 관계를 맺어 온 말리와 부르키나파소도 군부 쿠데타로 친(親)프랑스 정권이 무너졌다. 자연히 프랑스와의 군사협력도 끝장이 났다. 프랑스는 과거 자국 식민지였던 부르키나파소, 차드, 말리, 모리타니, 니제르 등 사헬 지역 국가에 한때 5000명 넘는 규모의 군대를 주둔시키며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이번 니제르 철군을 계기로 전문가들 사이에선 ‘프랑스가 아프리카에서 사실상 쫓겨나고 있다’는 분석에 더욱 무게가 실릴 전망이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