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을 기다렸습니다. 2025년 에이펙 정상회의 개최지는 제주가 최적입니다.”
제주도가 2025년 11월 개최 예정인 제32차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에이펙) 정상회의 유치전에 다시 도전장을 내밀었다.
20년 만에 한국에서 열리는 에이펙 정상회의 유치에 제주를 비롯해 인천, 경북 경주, 부산 등 4곳의 지방자치단체가 경쟁 중이다.
2005년 에이펙 정상회의 유치 경쟁에서 부산에 고배를 마신 제주는 일찍이 설욕전에 나섰다.
26일 제주도에 따르면 제주는 2020년 9월 제주관광공사, 제주컨벤션뷰로 등이 참여하는 제주유치추진준비단을 구성했고 2021년 4월 조직을 확대했다. 올해에는 유치 업무를 추진하는 전담 조직과 제주유치범도민추진위원회를 발족했다.
외교부는 추진기획단을 구성하고 내년 초 유치신청서를 받는다. 내년 2∼3월 외교부 현장평가와 프레젠테이션 등이 예정돼 있다. 개최 도시 발표 시기는 4월 총선 이후인 5∼6월로 예상된다.
◆“개최 도시 선정 관련 정치적 배려 배제해야”
일각에선 최근 2030 엑스포 유치 실패가 부산 지역 동정 여론 등으로 개최 도시 선정에 변수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2005년엔 제주와 서울, 부산이 경쟁한 가운데 부산이 낙점됐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2004년 2월 부산항만공사 출범식 때 부산을 방문해 ‘에이펙 지방 개최’라는 정부의 원칙을 발표하자 제주와 부산 간 사활을 건 유치전이 불붙었다. 부산이 열린우리당 부산시지부 ‘에이펙부산유치실현위원회’ 출범으로 세몰이를 가속화하며 4·15 총선과 연계한 압박 작전을 노골화하자 제주도는 개최지 선정 과정에 정치적 의미나 상황 논리가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우려를 표명했다. 부산은 2004년 4·15 총선 이전에 조기 결정할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에이펙 개최도시선정위원회는 2004년 4·15 총선 직후 4월26일 부산을 개최 도시로 발표했다.
제주도 관계자는 “정부의 공정한 심사와 객관적인 결정 절차를 기대한다”며 “공정한 룰에 의해 정정당당히 경쟁할 수 있다면 그 결과에 대해서는 모두가 깨끗이 승복할 것으로 확신한다”고 밝혔다.
제주는 청정한 자연환경과 온화한 기후, 풍부한 문화관광자원 등 강점을 부각하고 회의시설, 숙박, 공항, 교통·경호 여건 등을 내세우고 있다.
◆“정상회의 개최 도시 지방 휴양지가 대세”
역대 에이펙 정상회의 등 세계 정상회의는 대부분 지방 휴양도시에서 개최됐다.
정상들 간에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일상적인 장소에서 벗어나 평화롭고 여유로운 휴양지 등에서 개최하는 게 특징이다.
제주는 1991년 에이펙 각료회의(서울), 2005년 에이펙 정상회의(부산)가 대도시에서 열린 만큼 2025년 에이펙 정상회의는 지방 휴양도시인 제주에서 개최해 국정과제인 지역균형발전을 실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제주는 국내 최고의 관광휴양지로서 정상회의 특성에 부합하며 회의산업 중심지로서의 위상을 재정립해 제주 경제의 새로운 도약을 꿈꾸고 있다. 국제자유도시 추진 20년을 맞는 전환기에 세계 속에 제주를 알리고 대한민국의 브랜드를 높일 계기로 삼겠다는 구상이다.
제주 개최 당위성과 적합성으로 우수한 정상회의 개최 환경을 꼽고 있다. 정부의 어려운 재정 여건 속에서 대규모 기반시설 신규 투자 없이 안정적인 개최가 가능하다.
서귀포시 중문관광단지 내 최대 4300석 규모의 제주국제컨벤션센터(ICC)와 2025년 8월 준공 예정인 제주 MICE다목적복합시설 등 충분한 회의시설, 다수의 특급호텔 등을 보유하고 있다.
주 회의장인 ICC JEJU 주변 특급호텔에서 각국 정상 간 개별회의, 최고경영자(CEO) 회의 등이 가능하다. 최근에 주변 15분 거리 이내에 6성급 호텔과 7성급 수준의 리조트가 개관했다.
과거 한·미, 한·소, 한·중, 한·일 정상회의 등 6차례의 정상회의와 대규모 국제회의, 2001년부터 개최한 제주포럼 등 풍부한 국제회의 경험과 비결을 갖고 있다.
제주의 강점은 최적의 경호 여건과 안전한 개최 환경이다. 섬 지역 특성상 통제가 쉬워 21개국 정상에 대한 경호·보안에 적합하다. 숙박시설은 객실 7만9255개를 갖추고 있어 다른 시·도에서 지원하는 경호·경비 인력 수용도 충분하다.
2005년 현장평가에서 우려 사항으로 지적됐던 제주국제공항 대형 항공기 이착륙과 기상 불량 시 대체 교통편이 없는 문제도 모두 보완했다. 제주공항 외에도 대한항공 소유 민간비행장인 정석비행장은 2009년 제주를 찾은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 일행을 태운 항공편이 착륙하기도 했다. 최근 3년간 제주공항 결항률은 2020년 0.00008%, 2021년 0.002%, 2022년 0.002%에 불과하다.
회의 개최 시기인 11월은 다른 시·도에 비해 온화한 날씨로 야외 활동 등 행사 진행에 유리하다. 최근 3년간 제주와 전국의 평균 기온을 비교하면 제주는 2020년 11.2∼17.3도, 2021년 10.9∼18.1도, 2022년 11.8∼19.3도인 반면 전국 평균은 2020년 3.8∼14.3도, 2021년 3.3∼14.5도, 2022년 3.9∼16.5도를 기록했다.
◆“에이펙 목표 실현 최적지”
제주도는 △무역·투자 △혁신·디지털경제 △포용적·지속가능한 성장 등 에이펙 목표를 실현할 수 있는 최적지임을 내세우고 있다.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α 정책 추진으로 제주를 중개 거점으로 21개 회원국과 전 세계를 연계한 글로벌 경제 공동체 확대가 가능하다. 풍부한 자연유산과 미래모빌리티(이동수단)·우주산업 등 미래 신산업이 공존하고 있다. 에너지 분야 탈탄소화를 통한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끌기 위해 무탄소에너지(CFE)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카본프리 아일랜드 2030 추진, 청정그린 수소생태계 조성, ‘30㎿ 청정수소 생산을 위한 기반 기술개발 및 실증사업’ 선정 등 에너지 대전환을 위한 주도권을 확보했다.
유네스코 자연환경 분야 3관왕 인증, 인류무형문화유산 지정, 제주올레길 등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제주의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누리고 독특한 문화관광 체험 기회를 제공해 평생 잊을 수 없는 좋은 경험을 누릴 수 있다.
무엇보다 2005년 유치에 실패했던 경험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는 도민의 열망으로 각계 각층의 지지 결의와 응원이 이어지고 있고, 자원봉사자의 높은 참여 의지가 강점이다.
양문석 에이펙 제주유치범도민추진위 공동위원장(제주상공회의소 회장)은 “제주는 다양한 국제회의 개최 경험과 기반시설, 보안, 경호에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며 “특별자치도 출범과 함께 동북아시아의 중심 역할을 다하는 세계평화의 섬 제주에서 도민 역량과 마음을 하나로 모아 꿈을 실현해 나가겠다”고 의지를 다졌다.
제주연구원은 2025년 에이펙 정상회의를 제주에 유치하면 지역 경제에만 1조783억원의 생산 유발과 4812억원의 부가가치 유발, 9288명의 취업유발 효과가 창출될 것으로 예측했다.
에이펙은 전 세계 인구의 약 40%, 국내총생산(GDP)의 약 59% 및 교역량의 50%를 점유하는 세계 최대의 경제 협력체이다.
◆오영훈 제주도지사 “그린수소 등 미래 신산업 추진 제주, 에이펙 추구 가치에 부합”
“제주가 에이펙(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이 추구하는 가치와 목표에 가장 부합하는 도시라는 사실이 정상회의 유치 당위성이자 최대 강점입니다.”
오영훈(사진) 제주도지사는 26일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에이펙은 △무역과 투자 △혁신과 디지털경제 △포용적·지속가능한 성장을 3대 목표로 한다. 제주는 국제자유도시이자 세계평화의 섬이며, 유네스코가 인정한 천혜의 자연과 공존하는 탄소중립을 비롯한 그린수소와 민간우주산업 등 미래 신산업을 추진하고 있다”며 “에이펙의 가치에 부합되는 부분에서 제주도가 경쟁 도시들에 비해 압도적으로 우위에 있다”고 말했다.
오 지사는 “현재 시설로도 당장 행사를 개최하고 있을 정도로 숙박과 회의시설 등 정상회의 기반시설을 완비했다”며 “중문관광단지 일대는 국제회의시설과 특급호텔이 밀집해 있어 정상들이 방문했을 때 적절한 경호가 보장되는 가운데 숙박시설을 이용할 수 있는 여건이 확대됐다”라고 강조했다.
오 지사는 개최 당위성으로 그동안 제주가 쌓아 온 경험과 성과를 꼽았다. 그는 “제주는 6차례에 걸친 정상회의와 대규모 국제회의 개최 노하우를 가지고 있다. 미래 신성장산업을 역점 추진하는 한편, 2040 플라스틱제로 프로젝트, 남방큰돌고래 생태법인 추진 등 지속 가능한 성장을 지향하는 선도도시라는 점이다. 아울러 아름다운 자연과 제주의 독특한 전통문화, 힐링의 경험을 각국 정상과 참가자들에게 선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소개했다.
오 지사는 차별화한 유치 전략으로 “20년 전 에이펙 도전으로 선행학습을 마쳤고, 한마음으로 응원하는 도민이 있다”며 “2005년 에이펙 정상회의 유치 최종 단계까지 경합했던 경험은 이점이라고 본다. 당시 선정심사위원회로부터 평가받았던 내용을 분석해 제주의 강점과 약점을 점검했다. 약점으로 지적받았던 사항은 보완했고, 강점은 더욱 부각해 유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한다는 전략”이라고 밝혔다.
오 지사는 “제주가 2025 에이펙 정상회의를 유치한다면 관광산업 경쟁력을 한 차원 높일 뿐만 아니라 UAM(도심항공교통), 민간 항공우주산업, 그린수소 에너지 등 역점적으로 추진하는 미래 신성장산업 분야의 기술 교류와 협력도 활발해지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