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메뉴 보기 검색

1941년 진주만의 영웅, 82년 만에 국립묘지에서 '영면'

침몰하는 함정에서 동료들 구하다가 산화
시신 없어 '실종' 처리… 2021년 신원 확인
전사 후 82년 뒤에야 알링턴 묘지에 묻혀

일본군이 미국 하와이 진주만을 공습한 1941년 12월7일 미 해군 제임스 워드(당시 20세) 일병은 진주만에 정박해 있던 전함 ‘오클라호마’의 승조원이었다. 공습 개시 직후 오클라호마는 일본 전투기가 투하한 폭탄을 무려 9발이나 맞았다. 개전 20분 만에 함정은 뒤집어졌고 곧 가라앉았다.

 

제임스 워드(1921∼1941) 미 해군 일병. 1941년 일본군의 하와이 진주만 공습 당시 동료들을 구하고 장렬히 전사했다. 사후에 미군 최고의 명예훈장이 추서됐다. 미 국방부 홈페이지

당시 워드는 함정의 포탑 위에 있었다. 아비규환 속에 살아남은 승조원들은 앞다퉈 배를 빠져나갔다. 하지만 공습으로 전기가 끊겨 사방이 어두워진 탓에 생존자들은 탈출로가 어디인지 찾을 수 없었다. 워드는 포탑에 있던 승조원 중 유일하게 손전등을 갖고 있었다. 그는 전우들이 안전하게 함정에서 탈출할 수 있도록 손전등을 켠 채 포탑 위를 지켰다. 많은 이가 손전등이 만든 한 줄기 빛에 의존해 배를 빠져나가는 동안 워드는 자신의 자리를 끝까지 지켰다. 무사히 함정에서 벗어난 장병들 사이에서 워드의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그날 오클라호마 승조원 가운데 429명이 목숨을 잃었다. 워드도 전사한 것으로 추정됐으나 시신은 발견되지 않았다. 훗날 바닷속에서 인양한 함정 오클라호마 내부에서 그 승조원들로 추정되는 유해가 여럿 발견되었지만, 당시의 빈약한 유전자(DNA) 분석 기법으로는 사람의 신원을 파악하기 어려웠다. 워드는 제2차 세계대전 전사자들이 묻힌 하와이 태평양 국립묘지 내 ‘실종자 추모의 벽’에 이름이 새겨졌다.

 

워드는 1921년 9월10일 오하이오주 스프링필드에서 태어났다. 야구를 잘했던 그는 한때 미 프로야구 마이너리그 선수로 진출할 뻔했다. 1939년 고교 졸업 후 잠시 공장에서 일하다가 유럽에서 2차대전이 터지며 미국에도 전운이 감돌던 1940년 11월25일 해군에 입대했다. 당시 군인들 사이에선 야구가 인기였다. 워드는 학창시절 쌓은 실력을 십분 발휘해 미 해군 전체를 통틀어 최고의 강타자로 부상했다고 한다.

 

지난 21일(현지시간) 미국 수도 워싱턴 인근 알링턴 국립묘지에서 명예훈장 수훈자인 제임스 워드 해군 일병의 장례식이 엄수되고 있다. 워드는 1941년 12월7일 일본군의 하와이 진주만 공습 당시 실종돼 그간 전사한 것으로 추정되다가 80년이 흐른 2021년 8월 유해의 신원이 확인되며 비로소 영면에 들었다. 미 국방부 홈페이지

진주만 공습 이후 실종된 워드의 시신은 수습되지 않았다. 하지만 생존자들의 증언을 종합하면 그가 미 해군을 위해 기여한 공적은 충분히 인정할 만했다. 공습 이듬해인 1942년 3월 미 행정부는 그에게 명예훈장(Medal of Honor)을 추서했다. 명예훈장은 미국에서 군인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영예에 해당한다. 당시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직접 위로의 편지를 써 고인의 부모한테 전달했다.

 

2015년 미 국방부 전쟁포로실종자확인국(DPAA)은 전후 눈부시게 발전한 DNA 분석 기법을 토대로 전함 오클라호마에서 수습한 유해의 인원 확인에 나섰다. 그로부터 6년이 지난 2021년 8월19일 마침내 워드의 유해가 확인됐다는 낭보가 전해졌다. 다만 코로나19 대유행이 한창이던 때라 하와이에서 미국 본토로 시신을 운구하는 작업은 뒤로 미뤄졌다. 25일(현지시간) 미 국방부에 따르면 신원 확인 후 2년 넘게 지난 21일에야 수도 워싱턴 인근 알링턴 국립묘지에서 워드의 장례식이 엄수됐다. 국방부는 전사부터 영면까지 고인이 겪은 오랜 세월을 회고하며 ‘고향으로 가는 긴 여정’(A Long Journey Home)이라고 소개했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