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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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타워] ‘소멸 위기’ 밀양의 실험에 주목 이유

문화·역사 활용해 자구 노력… 인구 유입 이끌어

전국에 매서운 한파가 몰아친 지난 21일,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내·외국인 50여명과 ‘로컬100 보러 로컬로 가요’ 첫 행선지로 택한 밀양 방문길에 동행했다. 배우 전도연에게 칸 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안겨 준 영화 ‘밀양’과 ‘날 좀 보소∼’로 시작하는 ‘밀양아리랑’으로 우리 귀에 친숙한 지역이다. 문체부가 얼마 전 선정한 ‘로컬(지역)100’은 ‘독일마을 맥주축제’(경남 남해), ‘하회마을’(경북 안동), ‘DMZ 평화의 길’(강원 고성), ‘성심당’(대전 중구), ‘자라섬 재즈페스티벌’(경기 가평) 등 지역별로 대표할 만한 매력적인 문화자원 100곳이다. 밀양은 1957년 밀양문화제로 출발해 해마다 5월쯤 열리는 60여년 전통의 ‘밀양아리랑대축제’가 뽑혔다.

이처럼 ‘로컬100’은 지역의 문화, 예술, 역사, 생활양식 등 지역 문화 가치를 널리 알려 내·외국인 관광객이 많이 찾도록 하고, 경제 활성화와 인구 증대 효과도 노린 정책 사업이다. 실제 로컬100이 자리한 지역의 상당수가 인구 급감으로 소멸 위기에 놓여 있다. 밀양만 해도 1960∼1970년대 인구가 20만명이었으나 지금은 10만명가량으로 반 토막 났다. 게다가 노년층 비중은 30%를 훌쩍 넘겨 시 단위에서 전북 김제와 경북 문경 다음으로 소멸위험지수가 높다. 시내 중심에 있던 재학생 5000명 규모의 국립 밀양대가 2006년 부산대로 통폐합되면서 문을 닫은 후에는 아예 활력을 잃어버렸다. 햇살이 풍부한 지역이라는 뜻의 이름(밀양·密陽)과 달리 그늘이 짙은 소도시로 전락한 셈이다.

이강은 문화체육부 선임기자

그래도 밀양시 공무원과 시민들이 절망과 체념에 빠지지 않고 ‘햇살문화도시’로 가꾸겠다며 팔을 걷어붙이자 희망의 싹이 트였다. 이들은 정선·진도아리랑과 함께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밀양아리랑을 중심으로 3∼4년 전부터 밀양만의 문화·역사 자원을 연계한 관광·문화생태계 구축에 나섰다. 이날 유 장관 등 방문단에게 옛날 전통가옥과 밀양향교, 삼랑진 영남대로 자전거길, 국보로 재지정된 ‘영남루’, 밀양아리랑아트센터 등에서 선보인 체험·관람 프로그램도 알찬 편이었다. 브라질 출신 방송인으로 한국에서 15년째 생활 중인 카를로스 고리토씨는 “밀양은 처음인데 (지역 특색을 반영한) 체험·관광 프로그램이 아주 마음에 든다”며 “한국에 와서 주로 서울 등 대도시에만 머무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밀양처럼) 지역에도 멋있고 재밌는 곳이 많다는 것을 알면 기꺼이 찾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밀양시가 오랫동안 방치된 옛 밀양대 캠퍼스를 활용해 문화도시·소통협력공간 등을 조성하는 ‘햇살문화캠퍼스’ 사업을 추진하고, 창업캠프와 기획자 양성 등 다양한 청년 지원 활동으로 청년들에게 일거리를 만들어 주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이런 노력 덕인지, 2020년을 기점으로 전입자(6778명)가 전출자(6695명)보다 조금 많은 추세가 이어지고 있다.

밀양의 사례는 같은 처지의 소멸 위기 지역과 대책 마련에 부심하는 정부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가뜩이나 재정자립도가 낮은 기초 지방자치단체에서 단순히 돈을 풀어 출산·전입 인구를 늘리는 건 한계가 뚜렷하다. 지역의 특성과 강점을 살려 대도시 지역 사람들이 자주 찾거나 머물고 싶은 환경을 조성하는 게 낫다는 얘기다. 같은 맥락에서 정부도 지역별 상황을 감안해 세심한 지원책을 마련하고 꾸준히 뒷받침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끝은 뻔하다. 밀양의 실험이 더욱 주목되는 이유다. 어렵게 틔운 희망의 싹이 뿌리를 단단히 내리고 꽃을 활짝 피울지, 그 반대가 될지.


이강은 문화체육부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