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금난에 빠진 태영건설의 워크아웃(기업구조개선) 신청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한국 경제 전반에 먹구름이 드리우고 있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부실화가 경제위기의 뇌관이 될 경우 건설사들의 줄도산이 현실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27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태영건설은 주요 계열사 매각을 포함한 경영정상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워크아웃 신청을 최종 결정한 것은 아니지만, 이미 법무법인 등을 통해 절차를 확인하고 채권은행과 관련 대화를 나누는 등 준비 과정에 일부 돌입한 것으로 전해졌다. 태영건설 관계자는 “모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필요한 절차를 진행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건설사 줄도산 ‘공포’
태영건설이 워크아웃을 신청할 경우 건설업계 전반으로 타격이 확산할 수밖에 없다. 부동산 시장 침체가 이어지는 가운데 증권가 등에서는 이미 태영건설의 이름과 함께 PF 부실 위험이 거론되는 기업 리스트가 돌고 있는 상황이라 PF를 포함한 건설 분야 자금 전체가 묶일 가능성이 있다.
건설업계에서는 지방 중소형 건설사들이 태영건설보다 훨씬 위험한 상황에 몰려 있다는 하소연이 이어지고 있다. 대형 건설사의 경우 부동산 자산 등을 처분하거나 모기업의 도움을 받아 버틸 수 있지만, 중소형 건설사들은 이미 이자도 내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라는 것이다.
국토교통부 건설산업지식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이날까지 폐업한 종합건설사는 총 571곳으로, 2006년(581곳) 이후 17년 만에 가장 많다. 지난해(327곳)와 비교하면 68.5% 급증한 수치다. 건설업은 시행사가 종합건설사에 발주를 하고, 종합건설사가 다시 전문건설업체 등에 하도급을 의뢰하는 방식이 일반적이다. 종합건설사의 폐업은 곧바로 하도급사의 연쇄 도산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최근 대한건설정책연구원이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전국 건설업체 중 929곳(41.6%)이 잠재적 부실 건설기업으로 분류됐다.
전문가들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벌어진 건설사 줄도산이 내년부터 재현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2008년 말부터 2011년 사이 당시 시공능력 100위권 업체의 30% 정도가 워크아웃이나 법정관리에 들어간 것으로 추산된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고금리와 원자재 가격 상승까지 맞물려서 상당수 전국의 사업장들이 어쩔 수 없이 옥석이 가려지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 상황”이라며 “내년이 대한민국 건설시장의 과도기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박철한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내년에도 건설기업의 자금조달 어려움이 계속되면서 수주도 줄어들게 될 것”이라며 “정부나 금융권이 현장별로 옥석을 가려 우량 사업장은 대출 부담을 낮춰주는 등 대책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금융권도 전전긍긍
건설사 위기가 현실화하면서 자금을 빌려준 금융권은 ‘좌불안석’ 형국이다. 특히 은행과 같은 제1금융권이 아닌 저축은행·캐피털·증권사와 같은 제2금융권에서 위기가 본격화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9월 말 기준 전체 금융권 부동산 PF 대출잔액은 134조3000억원, 연체율은 2.42%였다. 이 중 은행과 보험의 대출잔액이 각각 44조2000억원, 43조3000억원으로 전체의 65%를 차지했는데 연체율은 각각 0%와 1.11%로 낮은 편이었다.
문제는 제2금융권이다. 증권의 대출잔액은 6조3000억원 정도였으나 연체율이 무려 13.85%에 달했으며 9조8000억원의 대출잔액을 기록한 저축은행도 연체율이 5.56%에 달했다. 카드·캐피털과 같은 여신전문의 경우엔 26조원의 대출잔액 속 4.44%의 연체율을 보였다.
특히 제2금융권은 은행들이 대출해주지 않는 사업장에 대출을 해주는 경향을 띠기 때문에 건설경기 하락에 따른 위험도 상승에 더 크게 노출돼 있다. 본 착공도 시작하지 않은 상태에서 자금조달을 위해 빌린 ‘브리지론’ 상태인 사업장들이 다수인 것도 문제다. 한국금융연구원의 자료에 따르면 전체 PF 대출에서 차지하는 브리지론 비중은 저축은행이 58%로 가장 많았고, 캐피털사가 39%, 증권사가 33%였다. 공사가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사업성이 낮아지면서 부실대출화가 되는 것이다.
금융권에서는 부동산 경기 하락에 따른 금융권으로의 위기 전이가 내년부터 본격화될 것이라고 본다. 이혁준 나이스신용평가 금융평가본부장은 최근 한 세미나에서 현재와 같은 고금리 기조가 계속될 것이라는 전제하에 전체 브리지론의 30∼50%가 최종 손실로 이뤄질 수 있다고 추산했다. 9월 말 기준 대출 만기 연장으로 버틴 브리지론 규모는 30조원 수준으로, 최악의 경우 금융권에서 9조∼15조원의 손실이 날 수 있다는 경고인 셈이다.
캐피털과 저축은행 등 제2금융권 회사들에 부정적 시선이 늘어가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국신용평가·한국기업평가·나이스신용평가 등 국내 신용평가 3사는 엠캐피탈의 신용등급 전망을 ‘A-(긍정적)’에서 ‘A-(안정적)’로 한 단계 낮췄다. 한국기업평가는 22일 오케이캐피탈의 신용등급을 A-(부정적)’에서 ‘BBB+(안정적)’로 하향 조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