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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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극적이지 않은 추억의 맛… 고소함의 깊이 끝이 없네 [김동기 셰프의 한그릇]

여수 손두부마을

고즈넉한 여수 만성리 해변에 위치
순두부 전골·청국장 등 메뉴도 다양
굴 보쌈 등 다양한 계절 반찬들 눈길
콩소메 같은 국물의 두부모둠전골
고소·바삭함 갖춘 비지전 강력 추천
돼지고기 비지찌개·보리밥 환상 궁합
만성리 해변의 바닷바람은 여느 해변보다 따뜻하게 다가온다. 횟집들 가득한 바닷가에서 오롯이 따뜻한 전골을 끓여 내는 곳이 있다.
여수 손두부마을

◆여수 손두부마을

12월. 예년 같지 않은 따뜻한 날씨가 크게 싫지만은 않다. 오랜만에 찾은 여수 만성리 해변의 날씨는 늦가을보다는 초봄 같은 포근한 바닷바람이 불었다. 장인이 여수에 자리를 잡은 지 어느덧 15년이 넘어간다. 산을 깎고 도로를 정비하고 건물을 지어 만성리 해변에서 가장 전망이 좋은 곳에 있는 장인의 펜션은 해돋이를 보기에 정말 최적의 장소다. 아침잠이 없는 아들과 함께 해변 나들이를 나섰다. 햇살이 비추는 바닷가를 함께 거니는 그 기분을 말해 무엇 할까. 해변에 즐비한 횟집들을 구경하며 족히 30년은 된 간판이 고즈넉하게 달려 있는 슈퍼에 들러 작은 캔 커피와 아들의 주스를 사 벤치에 앉았다. 바다 너머 보이는 배들의 고요함과 평화로움을 느끼며 여수의 아침을 맞이했다. 근처 펜션에서 퇴실을 한 관광객들이 아침 식사를 할 수 있는 곳을 물으니 장인의 단골 가게인 손두부 마을을 추천한다.

만성리 해변은 검은 모래 해변이다. 검은 모래가 신경통과 부인병에 좋다는 소문이 나 모래찜질을 하려는 해수욕객들이 많이 찾는다. 만성리 해변 너머 둥둥 떠 있는 배들을 보고 있자면 해변보다는 작은 항구 마을 같다는 생각이 든다. 여느 해변과 같이 횟집들, 해산물 요릿집들이 많은데 해변 입구에 손두부마을이 터줏대감처럼 버티고 있다. 여수에 올 때마다 들르는 곳인데 회를 그다지 즐기지 않는 나에게는 너무나 반가운 곳이다. 손두부마을은 문을 연 지 10년이 다 되어 가는데 최근에 리모델링을 해서인지 가게가 한층 깨끗해졌다.

손두부마을 한상

가족과 만성리 레일바이크를 타고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 가게에 들어섰다. 주말이면 해변을 찾는 관광객들과 레일바이크를 타러 온 관광객들이 몰려 점심시간에는 인산인해를 이룬다.

또 손두부마을은 아침 식사가 가능하기에 근처 펜션에서 숙박을 하고 온 이들도 해장이나 식사를 해결하기 위해 들르는 동네 맛집이다. 메뉴는 순두부전골부터 청국장, 순두부찌개, 된장찌개 등 두부가 들어가는 메뉴들이 준비되어 있고 또 바닷가답게 전복 같은 해산물을 추가해 넣은 메뉴들도 있다.

손두부마을은 추가 반찬이 셀프다. 작은 셀프바에 반찬들이 먹음직스럽게 담겨 있는데 또 이곳의 특별한 점은 계란 프라이도 셀프로 먹을 수 있다는 점이다. 1인당 2개까지인데 불경기, 고물가라 반가움보다 걱정부터 들었다.

가는 날이 장날인지 오늘 반찬엔 굴 보쌈이 나왔다. 살이 통통하게 올라온 겨울 굴과 부드럽게 삶은 삼겹살 보쌈은 정말 이 계절에나 느낄 수 있는 겨울의 맛이다. 생선조림은 매콤하고 달짝지근한 것이 밥반찬으로는 아주 그만이다. 양념장이 올라간 구운 두부의 고소한 맛은 끓고 있는 손두부전골을 한층 더 기대하게 만들어 준다.

순두부찌개

◆두부모둠전골과 비지전

반찬들을 먹고 있자면 곧 두부모둠전골이 끓기 시작한다. 보글보글하는 소리와 그윽하게 올라오는 바다 향기가 식욕을 돋운다. 고춧가루가 풀린 콩소메 같은 국물에 칼칼한 맛이 올라오는데 그 감칠맛 속의 개운함은 레일바이크를 타며 생긴 근육통의 피로감이 싹 가실 정도다. 전골 속에는 전복과 새우 그리고 만두, 야채들이 가득하고 또 국물의 속 맛으로 생각되는 새우젓의 재미있는 식감이 참 즐겁게 다가온다. 사이드 메뉴로 주문한 비지전은 그 고소함과 바삭한 식감에 한입에 반하게 되는데 비지라면 찌개로밖에 생각을 안 해 보았던 짧은 미식 생활에 종지부를 찍는 맛이다. 크로켓이나 라비올리, 함박스테이크 같은 반죽에도 이 비지를 사용하면 맛있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수 손두부마을은 해산물을 잘 즐기지 않는 관광객들에게도 인기가 있지만 마을 사람들에게도 이른 아침 식사, 기다리기 즐거운 점심 식사, 고단했던 하루를 마무리해 주는 저녁 식사까지 해결해 주는 동네의 맛집이다. 여수 만성리 해변의 다소 고즈넉한 풍광을 느끼며 먹는 두부전골과 비지전의 맛은 그 고소함의 깊이처럼 잊히지 않아, 멀리 사는 이로서 자주 가지 못하는 아쉬움이 생기는 곳이다.

◆비지

비지는 두부를 만들기 위해 간 콩을 짜 콩물을 빼고 남은 콩의 찌꺼기다. 특별한 영양소가 없고 섬유질이 많기에 옛날에 가난한 식자재로 취급을 받았다. 열량은 적은 반면 포만감이 크고 섬유질이 많기에 요즘엔 다이어트 식재료로 많이 활용이 된다. 비지찌개는 비지가 주인공인 가장 대중적인 메뉴다. 돼지고기를 넣고 걸쭉하게 끓인 이 찌개는 보리밥과도 궁합이 잘 맞는데 묵은지를 송송 썰어 넣으면 그윽한 옛날 맛이 난다. 그 옛날 맛이라는 게 참 재미있다. 어디서 먹어 보았을까? 궁금증이 이는 그런 맛 말이다. 비지는, 흐릿하지만 또 어디선가 먹어 보았을 듯한 추억이 남아 있는 그런 음식이다.

 

비지 크로켓


비지 크로켓 만들기

<재료>

간 소고기 100g, 비지 50g, 으깬 감자 50g, 밀가루 30g, 계란물 15g, 빵가루 30g, 소금 약간, 간마늘 10g, 다진 양파 15g, 다진 양송이버섯 30g, 샐러드유 넉넉히

<만드는법>

① 양파, 마늘, 버섯은 볶아 식힌다. ② 간 소고기와 볶은 야채, 비지와 으깬 감자를 섞어 치대고 소금, 후추 간을 한다. ③ 반죽을 빚은 후 밀가루 계란물 빵가루를 입혀 노릇하게 굽는다.


김동기 그리에 총괄셰프 Paychey@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