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28일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 6개국 협력기구인 걸프협력이사회(GCC)와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타결을 선언했다. 아랍에미리트(UAE)와의 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CEPA) 협상이 타결된 지 두 달 만의 성과로, 중국과 일본 등 주요국에 앞서 ‘신(新)중동붐’ 확산을 위한 터를 닦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이날 안덕근 통상교섭본부장(산업부 장관 후보자)과 자심 모하메드 알 부다이위 GCC 사무총장이 서울 강남구 한국무역협회에서 장관회담을 열고 한·GCC FTA 협상 최종 타결을 확인하는 공동선언문에 서명했다고 밝혔다. 우리나라가 체결한 25번째 FTA다.
GCC는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UAE, 카타르, 오만, 바레인 등 6개국의 협력기구로, 지난해 기준 6개국 전체의 국내총생산(GDP)은 세계 9위 규모다. 한국과의 교역 순위는 중국, 동남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미국, 유럽연합(EU)에 이은 5위다.
한·GCC FTA가 발효되면 품목 수 기준 한국은 89.9%의 관세를, GCC는 76.4%의 관세를 철폐한다. GCC 측은 여기에 더해 4.1% 상품의 관세를 감축한다.
자동차·부품, 무기류 등 한국의 주력 수출품에 붙었던 5% 관세는 20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철폐된다. 특히 세계 무기 수입 상위 10개국 중 사우디가 2위, 카타르가 3위로 중동 국가들의 방산 수요가 높은 만큼 ‘K방산’의 중동 수출 상승세에 탄력이 붙을 전망이다.
중동 내 K컬처의 인기에 힘입어 덩달아 인기가 높아진 K푸드, K코스메틱의 수출도 증가할 것으로 기대된다.
한국은 액화천연가스(LNG), 액화석유가스(LPG), 중유·벙커C유 등 일부 석유제품, 알루미늄 제품 등 GCC의 주력 생산품에 붙이는 관세를 단계적으로 철폐한다. 다만 가장 수입이 많은 원유는 양측 간 균형을 맞추기 위해 관세 철폐 대상에서 제외했다.
이번 FTA 체결은 에너지 자원의 안정적 확보에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의 작년 GCC 수입액 923억달러 중 대부분인 97%가 석유, 천연가스, 알루미늄 등 에너지 및 자원 품목이다.
10여년을 끌었던 지난한 협상에 마침표를 찍은 것은 두 달 전 한·UAE CEPA 협상 타결과 윤석열 대통령의 사우디·카타르 국빈 방문이 결정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GCC FTA 협상은 지난 2008년 7월부터 시작해 3차례 공식 협상 뒤 2010년 중단됐지만 지난해 재개돼 5차례 공식 협상이 이뤄졌다.
이번 FTA는 중동 시장을 놓고 경합 관계에 있는 주요국보다 먼저 타결에 성공해 시장 선점 기회를 얻었다는 의미가 더해졌다. GCC가 현재 FTA를 맺은 곳은 싱가포르와 유럽자유무역연합체(EFTA, 스위스·노르웨이·아이슬란드·리히텐슈타인)뿐이다. 영국, 중국, 일본은 GCC와 FTA 협상을 진행 중이다.
정부는 이번 FTA 체결을 계기로 중동 지역의 대대적인 제조업 육성 프로젝트에 진출할 기회도 모색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GCC 6개국은 모두 자국의 제조업 육성을 포함해 ‘포스트 오일’ 분야의 산업 기반을 구축하는 초대형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므로 전 세계에서 가장 유망한 시장 중 하나다.
정부는 향후 중동 핵심인 GCC와의 협력을 바탕으로 중동 전역은 물론 인접한 아프리카 권역까지 경제지도 넓히기에 힘을 쏟을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