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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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세군 종소리 들려도… 한국인들 지갑 안 여는 이유는?

2023년 10명 중 8명은 기부한 적 없다
경제적 부담·기부 단체 불신 등 이유
2022년 세계기부지수…119개국 중 88위

매년 연말이 되면 거리에서 종소리가 울려 퍼진다. 기부를 독려하는 구세군 종소리다. 옆에는 기부금을 넣을 수 있는 빨간 자선냄비도 보인다. 기부는 자선 사업이나 공공사업을 돕기 위해 물건이나 돈을 대가 없이 내놓는 것을 뜻한다. 유명인들이 기부하며 선한 영향력을 펼치기도 하고, 조용히 불우한 이웃을 위해 기부하는 이도 있다. 최근 사랑의 열매에 각각 3000만원을 기부한 프로게이머 페이커(이상혁)와 가수 김희재나 24년간 총 9억6479만7670원을 기부한 ‘전주 얼굴 없는 천사’도 그 예시다.

 

가슴이 따뜻해지는 기부 소식과 대조적으로 한국 기부문화는 세계 하위권이다. 지난 2년간 미세하게 올랐으나 2021년까진 기부 참여율이 지속해서 낮아졌다. 또 올해 국민 10명 중 8명은 기부 경험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부분은 기부하는 것에 대해 경제적 부담을 느꼈고, 나아가 기부단체에 대한 불신도 기부를 망설이는 이유 중 하나였다.

서울 중구 명동거리에 구세군 자선냄비 앞으로 시민들이 지나고 있다. 뉴스1

28일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국내 13세 이상 국민의 기부 참여율은 2011년 36.4%에서 2021년 21.6%로, 같은 기간 기부 의향은 45.8%에서 37.2%로 감소했다. 다만 올해 기부 참여율이 23.7%를 기록하며 2021년과 비교해 9.9%포인트 증감률을 보였다. 그러나 여전히 3%를 넘기지 못하며 낮은 수치임은 여전했다.

 

기부를 망설이는 이유는 뭘까. 가장 큰 이유는 경제적 부담(46.5%)이었다. 뒤이어 ‘기부에 관심이 없다(35.2%)’, ‘기부 단체 등을 불신한다(10.9%)’, ‘기부 방법을 모른다’(2.7%) 순이었다. 2000년대 이후 기부금 세제지원은 축소되고 공익법인 규제는 강화하면서 소극적인 기부 정책이 이어진 영향으로 추정된다. 이에 대한상공회의소는 민간기부 활성화 방안으로 ‘기부금 세제지원 확대’, ‘공익법인 규제 개선’, ‘생활 속 기부문화 확산’ 등을 제시했다.

 

기부 장려 방안으로 2023년 1월1일부터 시행된 ‘고향사랑기부제’가 있다. 고향사랑기부제는 지방자치단체에 기부하면 세제 혜택과 함께 지역특산품을 답례로 제공받는 제도다. 기부와 동시에 지방재정을 확충해 지역 간 재정 격차를 완화하고, 지역특산품 등을 답례품으로 제공해 지역경제 활성화까지 도모한다.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다만 인천에서 ‘비계 삼겹살’ 같은 답례품 품질 문제가 불거졌다. 지난 26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고향사랑기부제 인천 미추홀구는 안 하는 편이 좋을 듯’이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작성자는 “괜찮아 보이는 부분을 위에 올려놓고 포장을 해놔서 비닐을 벗겼을 때 기분이 더 나빴다”며 “고향사랑기부제로 답례품 받을 분들은 생물이 아니라 공산품으로 받는 게 좋을 듯하다”고 남겼다.

 

기부단체를 향한 불신도 문제다. 대표적으로 2019년 불우아동을 돕는다며 기부금을 개인용도로 탕진한 윤모(56) 새희망씨앗 회장이 있다. 당시 상습사기·기부금품의 모집 및 사용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 등으로 기소된 윤씨에게 징역 6년이 선고됐다. 윤씨는 2014부터 2017년까지 기부단체 사단법인과 교육콘텐츠 판매업체를 함께 운영하며 4만9000여명에게 받은 기부금 127억여원을 횡령했다. 그가 실제로 기부한 금액은 전체 모금액 중 1.7% 수준이었다. 나머지는 아파트, 토지 등의 부동산을 사거나 개인회사 직원급여와 운영비 등으로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상공회의소가 발표한 ‘공익활동 활성화를 위한 제도개선방안’ 보고서를 보면 지난 10년간 한국 기부문화는 세계 순위, 참여율, 기부 의향에서 모두 하락세를 보였다. 영국 자선지원재단 CAF가 매년 발표하는 세계기부지수에서 한국은 지난해 119개국 중 88위였다. 2021년에는 110위로 더 낮은 순위였다.

 

특히 한국은 2011년 57위였지만, 2022년 순위가 88위로 하락했다. 2022년 기준 기부 선진국인 미국(3위)이나 호주(4위) 외에도 중국(49위)보다도 한참 낮은 순위다. 반면 중국은 2011년 이후 지난해까지 140위에서 49위로 뛰었다. 이에 대한상공회의소는 “우리나라가 팬데믹에 의한 경기 불안으로 기부 심리가 위축됐다”면서 “반면 중국은 세계 경제 대국 2위로 도약해 인민이 함께 부유해지자는 ‘공동부유’ 운동이 확산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김지호 기자 kimjaw@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