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가 일터에서 다치거나 목숨을 잃으면 사업주를 강하게 처벌하도록 한 중대재해처벌법이 다음 달이면 시행 2년을 맞는다. 지금까지 사업주 12명이 이 법을 위반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한 번 이상의 법원 판단을 받았다. 이 중 실형을 선고받은 사업주는 1명에 그친다.
31일 법조계에 따르면 법원은 올해 4월 중대재해처벌법 기소 사건에 대한 ‘1호 판결’을 내렸다. 하청노동자가 공사 현장에서 추락해 숨진 사고와 관련해 원청 대표에게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이날까지 12호 판결이 나왔고 유일하게 실형을 선고받은 한국제강 사업주(2호 사건)는 지난 28일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됐다. 1심에 대해 검사와 피고인이 항소하지 않아 판결이 확정된 경우도 2건이 있다.
1심 판결이 나온 12개 사건에서 사업주 12명은 모두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가 유죄로 인정됐다. 법원은 이들에게 평균 12.3개월의 징역형을 선고했다. 다만 실형이 나온 2호를 제외하고 나머지 사업주 11명은 1∼3년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경우가 4번으로 가장 많았고, 가장 가벼운 형은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이 선고된 12호 사건이다.
지난해 1월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은 사업장 등에서 사망사고나 다수가 다치는 사고가 났을 때 사업주를 처벌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노동자의 안전 및 보건 확보의무를 명시해 재해 발생 시 사업주가 이를 지켰는지를 따지도록 했다. 입법 취지가 유사한 산업안전보건법이 산업재해 예방을 위한 사전적 조치에 중점을 뒀다면, 중대재해처벌법은 중대재해를 야기한 사업주를 강력히 처벌하기 위한 사후적 법률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노동계에서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에도 ‘솜방망이’ 처벌이 이어져 법 제정 취지가 무색해졌다는 비판을 이어왔다. 반면 경영계는 대응 역량이 부족한 중소기업에 기소와 처벌이 집중된다며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이런 요구를 받아들여 정부와 여당은 상시 근로자 50인 미만 기업에 대한 법 적용 유예를 추가 연장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당초 계획대로라면 이들 사업장에 대해선 다음 달 27일 유예기간이 종료된다.
정부는 50인 미만 사업장을 대상으로 법 적용을 2년 추가 유예하되 안전관리에 1조5000억원을 투입한다는 방침이다. 고용부와 공공기관, 관련 단체 등이 참여하는 민관 합동추진단을 구성하고 컨설팅·인력·장비 등을 패키지로 지원한다는 것이다.
노동계는 이런 지원책이 “맹탕 수준”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한국노총은 지난 27일 이에 대해 “사업장이 지켜야 할 의무사항을 권고사항을 낮춰 사업주가 안전보건 조치의무를 방임하거나 방치해도 처벌받지 않도록 만들었다”며 “지난 수십년간 지원 정책을 펼쳐왔으나 과정과 성과에 대한 제대로 된 평가가 있었는지 성찰부터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