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메뉴 보기 검색

[사설] 노후아파트 또 화재 참사, 진화·대피 장비 설치 강제해야

아파트 화재로 주민이 희생되는 안타까운 일이 또 벌어졌다. 어제 오전 경기 군포의 15층짜리 아파트 9층에서 난 불로 50대 남성이 숨지고 아내가 중상을 입었다. 9~12층 주민 10여명도 연기를 마시는 등 크고 작은 부상으로 병원으로 옮겨졌다. 서울 도봉구 방학동 23층짜리 아파트 3층에서 난 불을 피해 위층의 30대 아빠가 7개월 된 아기를 안고 뛰어내렸다가 숨진 게 바로 1주일여 전이다. 어느 곳보다도 편안하고 안락해야 할 공간에서 누구든지 생명을 위협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끔찍하기만 하다.

불이 날 당시 아파트에 같이 있던 부인과 10대 손녀는 탈출했으나 남성은 거동이 불편한 탓에 미처 빠져나오지 못했다고 한다. 그렇더라도 아파트에 스프링클러나 소화기 같은 장비가 제대로 갖춰져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화재로 비상벨이 울렸고 연기도 잘 배출되는 구조라서 자체적으로 조기 진화할 수도 있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서다. 이 아파트도 2004년 5월 11층 이상 공동주택 모든 층에 스프링클러와 방화문 설치를 의무화하기 한참 이전인 1993년 사용승인이 난 노후건물이다.

아파트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보편적인 주거형태다. 단독이나 연립, 다가구주택 등에 비해 규모가 크다 보니 편의시설도 잘 갖춰져 있어 살기에 편리하다. 하지만 화재나 지진 같은 재난사고가 발생하면 자칫 대형 인명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게 단점이다. 소방청에 따르면 2020∼2022년 발생한 아파트 화재만 전국적으로 8233건에 이른다. 111명이 목숨을 잃고 964명이 다쳤다. 고층 선호 현상으로 인해 아파트 층수가 날이 갈수록 높아지면서 안전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소방당국이 아파트에 대한 소방설비 및 안전기준을 꾸준히 강화했으나 사각지대가 여전하다. 2005년 이전 완공된 아파트는 소화기나 스프링클러, 화재감지기, 완강기, 내림식 사다리, 경량 칸막이 같은 시설이 대부분 없다. 이런 아파트가 서울에만 200만가구가량이라고 한다. 노후 아파트를 언제까지 화재 사각지대에 놓아둘 수는 없는 일이다. 화재 진화나 대피 장비 설치를 강제할 필요가 있다. 관리비 인상 등 부담이 있겠지만 생명을 지키기 위한 안전 앞에서는 어느 것도 우선할 수 없다. 주민 각자가 화재 시 대피요령을 익혀두고 평상시 방화문을 개방하지 않는 등의 안전상식을 갖추는 것도 공동생활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