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대 국회의원 선거가 99일 앞으로 다가온 2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괴한에게 피습을 당하면서 정치권은 새해 벽두부터 안갯속 정국에 빠져들게 됐다. 여당은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 체제의 공식 출범과 함께 야당과 선명하게 각을 세우는 전략을 구상했으나 계획에 차질을 빚게 됐다. 또 야당 내에서는 민주당 이낙연 전 대표 등 신당 창당 움직임을 본격화하던 세력들도 당분간 일정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정치권은 이번 사건이 미칠 파장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이날 대전·대구 일정을 시작으로 전국을 순회하며 바람을 일으키려던 한 위원장은 오후 6시로 예정됐던 대구·경북 신년교례회 참석 일정을 취소했다. 국민의힘 박정하 수석대변인은 “예기치 않은 유감스러운 상황이 발생함에 따라 일정을 최소화하려는 조치”라고 설명했다. 한 위원장은 병문안 여부를 묻는 취재진에 “마음이야 당연히 지금 언제든지 (일정을) 중단하고 가고 싶은데, 이런 상황에서 방문하는 게 빠른 회복에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며 “치료 상황을 보고 일정을 맞춰보겠다”고 했다.
여당은 말을 아끼면서 추이를 살폈다. 국민의힘 윤재옥 원내대표도 의원들에게 메시지를 보내 “이재명 대표의 쾌유 기원 외에 불필요한 발언은 자제해 주실 것을 당부드린다”고 했다. 자칫 설화로 역풍이 부는 것을 경계한 것으로 풀이된다.
국민의힘 한 관계자는 “2006년 5월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의 피습은 총선을 열흘가량 앞두고 벌어져 선거 결과에 큰 영향을 미쳤다”면서 “아직 선거가 석 달가량 남은 상황에서 변수는 이 대표의 건강과 피의자의 범행 동기나 신상정보가 될 것 같다”고 내다봤다.
이 대표는 이날 피습으로 3일 참석 예정이던 윤석열 대통령과의 신년하례식에도 불참하기로 했다. 이 대표 측은 대통령실이 쌍특검법(김건희특검·50억클럽특검)에 대한 거부권(재의요구권) 행사를 예고한 데 따라 신년하례식 불참을 검토해오던 터였다.
정부는 이날 국무회의에서 지난달 28일 국회를 통과한 쌍특검법에 대한 거부권을 심의해 의결할 방침이었으나 국회가 법안의 정부 이송을 미루면서 의결 계획은 무산됐다. 정부는 당초 오전으로 예정됐던 국무회의를 오후로 연기하며 법안 이송에 대비했으나 결국 법안이 이송되지 않아 국무회의에 상정하지 못했다. 국회는 법 검토 작업이 진행 중이라 이날 중 정부로 이송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사실상 창당 카운트다운에 돌입했던 이낙연 전 대표도 이날 이 대표의 쾌유를 비는 메시지를 짧게 낸 뒤 향후 정치 일정에 대해선 말을 아꼈다. 수일 내 탈당과 창당 작업이 시작될 것이 예견됐지만 피습 사건으로 당분간 탈당과 창당 수순을 밟기는 어렵게 됐다는 관측이다. 민주당 친명(친이재명)계 안민석 의원은 이날 JTBC에 나와 “이제 오늘로 이낙연 신당의 바람은 잦아들 수밖에 없고 이제 멈출 수밖에 없다고 본다”며 “신당은 불가능해졌다”고 주장했다.
비명계 4인방의 독자 행보도 당분간 순연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비주류 모임인 ’원칙과 상식’ 소속 이원욱 의원은 이날 오전 피습이 있기 전 BBS 라디오에 나와 “내일(3일) 정도 의원들이 모여서 얘기를 깊이 나눠보고 (이 대표에게) 최후통첩을 해보려고 한다”고 했다. 앞서 김종민·윤영찬·조응천 의원 등은 이번주 최종 입장을 발표할 예정이었으나 이날 이 대표의 피습으로 탈당, 총선 불출마, 신당 합류 등을 놓고 고민해온 결심을 당분간 보류할 것으로 알려졌다.
1월 임시국회를 열고 밀린 민생법안 처리에 나서기로 했던 국회도 일정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이날 오후 2시로 예정된 민생법안의 조속한 처리를 위한 양당 ‘2+2(여야 정책위의장·원내 수석부대표) 협의체’ 회의도 연기됐다. 국민의힘 정희용 원내대변인은 “예정되어 있는 여야 2+2 협의체는 예기치 않은 유감스러운 상황이 발생하여 연기됨을 알린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