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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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선] 판사의, 판사에 의한, 판사를 위한

‘판사의, 판사에 의한, 판사를 위한.’

이른바 ‘사법 민주화’를 내세운 김명수 사법부의 특징은 이렇게 요약된다. 민주주의에 대한 링컨의 명언(‘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은 김명수 사법부의 사법 민주화에 적용해도 그대로 들어맞는다. 단지 그 주체가 국민이 아닌 판사로 바뀌었을 뿐이다.

2017년 소위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를 표면 위로 끌어올린 국제인권법연구회 판사들의 ‘사법혁명’이 우리에게 남긴 것은 무엇인가. 일선 판사들이 모여 직접 사법행정을 논의하는 ‘전국법관대표회의 상설화’, 판사들이 각 법원의 사무분담안을 정하는 ‘사무분담위원회’, 판사들의 손으로 해당 법원의 법원장을 추천하는 ‘법원장후보추천제’는 김명수 사법부의 대표적 유산으로 꼽힌다.

장혜진 사회부 기자

이들 제도의 공통점은 모두 ‘공급자(판사) 시각’에 방점을 찍고 있다는 데 있다. 물론 단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판사들 간의 소통과 참여, 투명성과 평등 추구를 이뤄냈다는 장점도 있다. 그러나 재판받는 입장인 ‘국민의 사정’과는 거리가 있다.

일례로 2022년 5월 개정된 ‘법관 등의 사무분담 및 사건배당에 관한 예규’는 전국법관대표회의에 참여하는 판사가 회의 출석 및 준비를 위해 필요한 기간에는 해당 판사 또는 해당 재판부에 사건배당을 하지 않거나 줄일 수 있는 규정을 도입했다. 이 같은 업무 공백은 재판 지연에 대한 국민 우려와는 상충하는 대목이다.

국민은 법원의 주요 사법행정이 “투명하고 민주적인 수평적 구조”(김명수 전 대법원장 퇴임사 중)로 이뤄지고 있는지에 대해 별 관심이 없다. 오로지 내 사건이 좀 더 신속하고 공정하게 처리되길 바랄 뿐이다. 우리 사회에서 조직의 주요 운영 사항을 구성원들의 대표회의체에서 논의하는 곳이 현재의 법원 이외에 몇 곳이나 있나. 자신이 속한 기관의 장을 직접 추천하는 조직 역시 몇 군데나 있을까.

국민은 판사들의 사무분담이 민주적으로 평등하게 이뤄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큰 관심이 없다. 단지 그 재판에 가장 적합한 판사가 내 사건 재판을 맡아 주길 바랄 뿐이다. 판사들 사이의 민주화도 의미 있는 일이지만, 그것이 현시점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사법부의 과제라고 생각하는 국민은 거의 없을 것이다.

사법부의 핵심을 이루는 인력은 독립된 각각의 판사들이지만, 사법부 그 자체가 개별 판사들의 단순한 총합과 같다고 볼 수는 없다. 사법부는 공정·신속하게 분쟁을 해결해 달라는 국민의 위임으로부터 태생한 하나의 유기체적 조직에 가깝다.

6년 전 사법혁명 당시 인권법연구회를 주축으로 한 판사들이 “제왕적 대법원장 체제를 타파해야 한다”며 들불처럼 일어날 때, 어느 평범한 변호사는 이런 말을 남겼다. “제왕적 대법원장? 재판받는 당사자로서 하나도 안 무섭다. 사실 별 상관이 없다. 오로지 제왕적 단독판사가 무서울 뿐.”

2024년 사법부에도 새해가 밝았다. 조희대 사법부는 더이상 판사의, 판사에 의한, 판사를 위한 법원으로만 남아선 안 된다. 이제는 국민의, 국민을 위한 사법부로 모든 사법 개혁의 관점을 바꿔야 할 때다.


장혜진 사회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