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의 판도를 바꾼 노르망디 상륙작전에는 한 가지 비화가 있다. 미·영·캐나다 연합군이 노르망디 해안에 상륙하는 날, 즉 디데이(D-Day)는 원래 1944년 6월5일로 정해졌다. 그런데 디데이를 이틀 앞둔 그해 6월3일 영국과 프랑스 사이 영불해협의 기상이 매우 좋지 않을 것이란 예보가 나왔다. 상륙작전에 참여할 장병들은 이미 영국 남부 항구에 정박한 함정에 승선해 출전 명령만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젠하워에 전달된 뜻밖의 보고서
연합국 최고사령관인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미국 육군 대장(훗날 미국 대통령 역임)은 연합군 지휘부와의 회의 도중 날씨에 관한 보고를 받았다. 영국군 소속 기상학자 제임스 스태그가 “6월5일 악천후가 예상된다”며 “디데이를 하루 미루라”고 조언했다. 아이젠하워는 고심에 휩싸였다. 작전을 늦춘다고 날씨가 좋아질 것이란 보장이 없었기 때문이다. 자칫 연합군의 프랑스 상륙이 1944년 7월 이후로 미뤄질 수도 있었다. 그 사이 낌새를 챈 독일군이 해안 경계를 대폭 강화한다면 자칫 낭패를 보게 된다.
결국 아이젠하워는 기상 전문가의 의견을 받아들여 디데이를 1944년 6월6일로 하루 연기했다. 예상대로 6월5일 영불해협엔 큰 비를 동반한 폭풍우가 몰아쳤다. 그리고 이튿날인 6월6일 날씨가 좋아지면서 연합군은 상륙을 강행한다. 독일군은 미처 대비를 못하고 있다가 허를 찔린 채 패퇴했다. 성공적으로 노르망디 해안에 교두보를 마련한 연합군이 이후 프랑스 내륙 깊숙이 진격하며 2차대전의 판세를 뒤집은 것은 우리가 잘 아는 사실이다.
역사적인 상륙작전 성공에 커다란 도움이 된 기상 정보를 제공한 아일랜드 국적 여성이 100세를 일기로 별세한 사실이 뒤늦게 전해져 눈길을 끈다. 5일 미국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모린 플라빈 스위니라는 이름의 여성이 지난달 7일(현지시간) 아일랜드의 한 요양원에서 숨을 거뒀다.
◆눈썰미와 침착함으로 역사를 바꾸다
스위니는 2차대전 당시 아일랜드 북서부 외딴 바닷가 마을 블랙소드 포인트의 우체국에서 일하고 있었다. NYT에 따르면 당시 우체국은 기상관측소 역할도 했는데, 스위니의 업무 가운데 하나가 그날 그날의 기상 자료를 기록하고 전송하는 일이었다. 다만 스위니는 자신이 수집한 정보가 누구한테 가서 어떻게 쓰이는지는 알지 못했다.
아일랜드는 오랫동안 영국의 식민지배를 받다가 1921년에야 독립했다. 자연히 영국과 관계가 나빠서 2차대전 발발 후에도 중립을 선포하고 영국 중심의 연합국에 가담하지 않았다. 다만 지리적으로 영국과 너무나 밀접한 사이였고 또 국민 다수가 심리적으로 연합국을 응원했기 때문에 기상 정보 등을 영국과 공유하며 나치 독일에 대항하는 연합국의 전쟁 수행을 도왔다.
1944년 6월 당시 21살이던 스위니는 거의 한 시간 단위로 기상 자료를 기록해 윗선에 보고하는 등 격무에 시달리고 있었다. 디데이가 다가오면서 영국 측에서 날씨에 관한 정확한 정보 수집에 혈안이 되었기 때문이다. 6월3일 야근을 하며 기상 자료를 살펴보던 스위니의 눈에 뜻밖의 수치 하나가 확 들어왔다. 기압이 급격히 떨어진 것이다. 이는 조만간 큰 비나 폭풍우가 몰아칠 가능성이 있음을 보여준다.
훗날 스위니는 그날의 상황을 회고하며 “영국 억양의 영어를 쓰는 한 여성으로부터 ‘기압 수치를 다시 한 번 확인해달라’는 전화를 받았다”고 말했다. 이어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며 ”하지만 확인하고 확인해도 (기압) 수치는 모두 같았다”고 덧붙였다.
결과적으로 스위니의 눈썰미와 침착함이 상륙작전에 투입된 연합군 병력 수만명의 목숨을 구한 것은 물론 연합국이 나치 독일을 물리치고 2차대전에서 이기는 데 중대한 역할을 했다. 영국의 2차대전 참전용사 조 카티니는 “우리는 스위니에게 많은 빚을 지고 있다”며 “그녀가 날씨를 읽지 못했다면 우리는 폭풍 속에서 죽었을 것”이라는 말로 고인을 애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