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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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건설사 직접시공 확대, 신중한 검토 필요

지난해 11월 서울시가 인천 검단아파트 붕괴 사고를 교훈 삼아 건설 현장의 불법 하도급 문제를 뿌리 뽑겠다며 발표한 ‘서울형 건설혁신대책’을 기화로 건설업계는 공공 분야 직접시공제도 확대와 관련한 논란이 뜨겁다. 서울시 발주 공사에서 철근 콘크리트, 교량 등 품질·안전과 직결되는 주요 구조물은 하도급을 금지해서 원도급자가 100% 직접 시공하게 한다는 취지다. 이에 발맞추듯 행정안전부도 올해 초 지방자치단체가 발주하는 종합공사의 낙찰자 결정 시 원도급자의 직접시공계획 평가를 추가하는 내용으로 지방계약예규를 개정하고 내년부터 적용하기로 했다.

직접시공제도는 원도급 건설사가 하도급을 주지 않고 인력·자재·장비를 직접 고용·사용해서 목적물을 완성하는 것으로 건설업계도 원칙적으로는 직접시공의 필요성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다만, 지자체 공사를 대상으로 추진되고 있는 직접시공비율이 ‘건설산업의 바이블’ 격인 건설산업기본법에서 정한 ‘10% 이내’ 비율에 비해 월등하게 높다. 직접시공 의무를 경험과 역량이 없는 종합건설사에게 마치 무 자르듯 뚝 떼어 맡길 경우 오히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위협받고 품질이 저하되는, 이른바 부실시공이 늘어날 수 있으므로 신중하게 단계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이 팽배한 상황이기에 정부와 지자체가 되짚어 봐야 할 점을 몇 가지 제시하고자 한다.

윤학수 대한전문건설협회 중앙회 회장

첫째, 무분별한 직접시공 확대는 오히려 부실을 야기할 수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품질 강화와 안전 확보를 위해서는 업종별 분업화·전문화를 통해 직접시공 역량을 키워 온 하도급자의 경험과 기술력을 십분 활용해야 하며, 저가·불법·불공정 하도급을 동시에 뿌리 뽑을 수 있는 하도급 관리·감독 강화 방안을 함께 들여야 한다.

둘째, 철콘, 교량 등 특정한 공종을 지정해 100% 직접시공하도록 강제하는 것은 원도급자의 시공 자율성과 효율성을 침해하는 과도한 규제이며, 바로 그 특정한 공종에만 주력해 온 하도급 전문건설업체들의 일감을 순식간에 빼앗는 것이다.

셋째, 큰 공사일수록 종합건설사의 관리와 전문건설사의 직접시공이 각각 역량을 발휘하는 것이 효율적이기에 건설산업기본법에서도 70억원 이상 공사는 직접시공 의무를 부과하지 않고 있다. 건설산업은 근 40년 동안 법률에 따라 ‘종합은 계획·관리·조정, 전문은 직접시공’으로 각자 역할이 구분되어 왔기 때문에, 오늘의 종합건설사 대부분은 근로자를 직접 고용하거나 자재·장비업체와 협력하는 경험이 전무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직접시공을 전담해 온 하도급 전문건설업체들이 원도급 입찰에 직접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대책이 필요하다. 전문공종의 분리발주, 주계약자 공동도급제도 등 현존하는 제도의 활성화가 대안이 될 수 있다.

직접시공 의무 확대는 자동차 제조회사에 2만여개의 부품을 모두 직접생산, 조립하라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기본설계만 가지고는 어떤 건축물도 정상적으로 지을 수 없다. 효율적인 시공을 위한 실시설계가 필요하다. 정부와 지자체는 건설산업이라는 빌딩을 지탱하는 양대 기둥인 전문건설과 종합건설에 ‘직접시공 확대 하중’이 균형 있게 전달될 수 있도록 디테일한 시뮬레이션을 바탕으로 신중한 실시설계를 우선해야 한다. 하중이 한쪽에 쏠리면 ‘결국 무너지거나, 중도에 다시 짓거나’ 둘 중 하나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늘 그렇듯,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윤학수 대한전문건설협회 중앙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