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는 1956년 홍콩에서 열린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초대 대회와 1960년 2회 대회에서 연속 우승하며 아시아의 맹주로 위용을 떨쳤다. 하지만 화려했던 첫 발걸음도 잊힌 지 오래. 한국은 이후 준우승만 모두 네 번 했을 뿐 단 한 차례도 우승컵을 들지 못하는 굴욕을 맛봤다. 우승 횟수도 일본(4회),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이상 3회)에 밀렸다.
64년 만의 아시안컵 정상 탈환이라는 한국의 숙원을 풀기 위해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이 10일 드디어 결전의 땅 카타르 도하에 입성했다. 지난 3일부터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에서 머물던 클린스만호는 이제 12일 개막하는 아시안컵을 향한 본격적인 여정에 돌입했다.
이번 대회에 기대감이 어느 때보다 높은 이유는 대표팀이 역대 최고의 전력을 자랑하기 때문이다. ‘캡틴’ 손흥민(31·토트넘)을 비롯해 ‘축구 천재’ 이강인(22·파리생제르맹), ‘황소’ 황희찬(27·울버햄프턴), ‘괴물 수비수’ 김민재(27·바이에른 뮌헨) 등 유럽 빅리그를 휘젓는 이름값 높은 멤버들이 포함됐다. 이외에도 조규성(25·미트윌란), 이재성(31·마인츠) 등 엔트리 26명 중 유럽파만 12명에 달한다.
이는 최근 대표팀 성적으로도 증명됐다. 클린스만호는 지난해 9월 사우디아라비아전 1-0 승리를 시작으로, 지난 6일 아부다비에서 진행한 이라크와의 최종 모의고사까지 승리(1-0)로 장식하며 A매치 7경기 무실점과 6연승을 질주했다.
선수들의 최근 컨디션도 최고조다. 손흥민은 2023∼2024시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에서 12골 5도움을 작성해 득점 공동 3위에 오르며 EPL 전반기 ‘베스트 11’에 선정될 정도로 존재감을 뽐내고 있다. 같은 리그인 황희찬도 대표팀 합류 전인 19라운드 브렌트퍼드전에서 멀티골을 퍼붓고, 20라운드 에버턴전에서도 도움을 작성하며 예열을 완료했다. 이강인 역시 지난 4일 툴루즈와의 프랑스 슈퍼컵(트로페 데 샹피옹)에서 결승골을 넣고 우승을 차지해 기분 좋게 대표팀에 합류했다. 공격진만 뜨거운 게 아니라 ‘수비의 핵’인 김민재도 독일 분데스리가 전반기 베스트 11에 드는 등 뮌헨에서 맹활약을 펼치고 있다. 클린스만 감독이 출정식에서 “64년 만에 국민 앞에서 트로피를 들어 올릴 수 있게 잘하겠다”고 다짐할 만큼 자신감도 남다르다.
한국의 최대 적수로는 일본이 꼽힌다. 20명의 유럽파가 포진한 일본은 모리야스 하지메 감독의 짜임새 있는 축구를 바탕으로 최근 10경기 전승 행진일 정도로 매섭다. 9일 한국의 조별리그 상대인 요르단과의 평가전에서도 6-1 완승을 거뒀다. 대진표에 따라 한국과 일본이 각 조 1위로 토너먼트에 진출할 경우 결승전에서 우승컵을 놓고 맞붙게 된다.
이번 아시안컵은 클린스만 감독의 운명을 좌우할 무대이기도 하다. 그간 평가전만 치른 클린스만 감독은 전술 부재, 재택근무 논란 등 여러 비판의 시선이 이어졌다.
미국 ESPN도 “2019년 파울루 벤투 전 감독은 아시안컵 8강 탈락 후 대표팀을 이끌고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 반등을 이뤄냈다. 클린스만 감독에게도 이런 기회가 주어질지 의문”이라며 “이런 의문을 걷어내려면 우승이 필요하다”고 평가했다.
한국은 이번 대회에서 말레이시아, 요르단, 바레인과 함께 E조에 속해 있다. 15일 바레인과 첫 경기를 치르고, 20일 요르단, 25일 말레이시아를 마주한다. ‘역대급 멤버’를 갖춘 클린스만호가 우승의 한을 풀며 날아오를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