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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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李 선거법’ 판사 사표 파문, 재판 지연 막을 실질 대책 시급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흉기 피습 8일 만인 10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에서 퇴원한 뒤 소감을 밝히고 있다. 최상수 기자

정치적으로 예민한 사건의 재판이 잇따라 지연돼 빈축을 사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재판장인 서울중앙지법 강규태 부장판사가 오는 2월 법관 정기인사를 앞두고 사표를 내 파문이 일고 있다. 이 사건 재판을 16개월이나 끌다가 갑자기 사표를 내 무책임하다는 비판이 거세다.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의 ‘불법 대북 송금 사건’ 재판은 1심만 15개월째인데도 공전을 거듭하고 있다. 이 대표를 흉기로 찌른 김모(67)씨가 “이 대표 재판이 연기되는 등 제대로 처벌하지 않는 것 같은 생각에서 범행했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사법부의 책임이 크다.

이 대표의 선거법 위반 재판은 법리와 증거 측면에서 비교적 간단하다. 이 대표가 대장동 개발의 핵심 실무자였던 고(故) 김문기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1처장을 알았는지, 백현동 토지 용도 4단계 상향이 국토교통부 협박 때문인지 여부만 가리면 된다. 하지만 준비 기일만 6개월이 걸렸다. 검찰이 주 1회 재판을 요청했으나 강 부장판사는 2주 1회를 고수했다. 이 바람에 1심을 6개월 내 끝내야 하는 이 선거법 사건은 16개월이 지난 지금껏 지지부진하다. 재판부 교체로 4·10 총선 전 선고는 어려워졌다. 제1야당 대표 사건을 맡은 재판장이 이토록 무책임하고 소신없는 행태를 보인 건 유례가 드물다. 이런 게 사법의 정치화 아닌가.

법원이 정치권의 눈치를 보고 있다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법원은 이 대표의 ‘위증교사 사건’에 대한 재판을 ‘대장동 사건’ 등 다른 재판과 분리해서 재판하는데도 한 달 가까이 시간을 끌었다. ‘민주당 돈봉투’ 사건 등도 재판부 교체로 선고가 늦어질 것으로 보인다. 판사들이 정치적으로 부담스러운 사건은 ‘폭탄 돌리기’를 한다는 내부 비판도 나온다. 서울고법 판사 등의 줄사표가 이어져 재판 공백 우려도 크다. 국민의 기대를 저버리는 행태가 아닐 수 없다.

김명수 전 대법원장 체제 6년 동안 납득할 만한 이유 없이 재판이 늦어져 사법 신뢰가 떨어졌다. 1심 선고에 울산시장 선거 개입 사건은 3년10개월,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자녀 입시 비리 사건은 3년2개월이나 걸렸다. 정치적 배경을 의심받았던 이유다. 조희대 대법원장은 취임 후 ‘공정하고 신속한 재판’을 위한 개혁 의지를 밝혀 왔다. 이번 파문을 가볍게 봐선 안 된다. 인사 시스템 정비 등 재판 지연을 막기 위한 실효성 있는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